"저, 아줌마가 최고라고 했어요"
어떤 초등학생이 후다닥 뛰어와서 가게 문을 빼꼼히 열고 하는 말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을 때 뒤따라오던 그 학생의 어머니가
"우리 아이가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주변에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을 말하라고 해서 빵집아줌마라고 했데요"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 아이는 어떤 생각으로 나를 떠올렸을까? 나를 떠올리면 맛있는 빵이 생각났던 걸까?
하긴 동네 사람들이 나만 보면 어쩜 그렇게 친절하냐는 말을 자주 하긴 했다. 아마 전직이 은행원이라 친절이 몸에 배어 있는 데다 평소에 잘 웃기 때문일 것이다. 내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인상 쓰는 바보가 있을까? 가끔 지치고 힘이 들 때면 천진스럽게 말하던 그 아이를 떠올렸다.
"그래, 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야!"
건너편 상가의 단골 미용실 원장님은 내 머리를 손질해주고는 늘 흡족해 했다.
"자기는 커트스타일이 아주 잘 어울려. 생글생글 웃고 있는 걸 보면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그때 내 나이가 마흔 하고도 혹이 붙었을 때다. 은행에서는 노땅 취급을 받아 퇴직했는데 동네에서 가게를 하다 보니 그나마 젊고 예쁘게 보였나 보다.
어이없게도 내게 고백을 한 사람도 있었다.
"저 사장님 좋아해요" 늦은 밤 느닷없이 들어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던지는 말에 당황했지만 이내 태연한 척
"저도 고객님 좋아해요"
"아니 저 그게 아니라....." 하며 내 앞을 막아섰지만 난 그렇게 얼렁뚱땅 넘길 수밖에 없었다. 단골인 그 사람의 아이들과 아내도 빤히 알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냐 말이다.
또 한 번은 어떤 청년이 수줍게 쇼핑백을 건네고 갔다. 열어보니 여자 속옷이 들어있었다. 당황한 나는 이내 전화해서 그 학생의 어머니에게 전했다. 겉보기는 멀쩡했는데 아마 발달장애아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엄마가 와서 한다는 말이
"예쁘게 생기긴 했네. 그러니 우리 애가..."
꼭 그렇게 비꼬며 말을 해야 했을까?
그런가 하면 늦은 밤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을 때 길게 너스레를 떠는 손님도 있었다. IMF 때라 사업이 잘 되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하고 마땅히 갈 곳도 없던 그 사람은 공연히 차를 끌고 나와 밤늦도록 이곳저곳 헤매고 다니다 이제야 집에 들어간단다. 아내와 이런 심정을 이야기 하면 좋으련만 애꿎은 동네 빵집 아줌마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내게 왜 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싶다가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들의 외로운 입장이 이해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매일 왔던 것은 아니고 두세 번 정도 왔었다. 아마 속이 답답해 대화 상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은 하필 남편이 퇴근 중이었다. 훤하게 밝혀진 제과점에서 두 남녀가 정담을 나누는 것처럼 보였는지 남편은 인상을 쓰며 가게에 들렀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집에서 남편과 마주쳤지만 뭐 딱히 해명할 것도 없고 그저 서로 무심한 척 했다.
내가 빵집을 하니 좋은 것은 어디를 가도 내 손에 빵보따리가 들려 있다는 것이다. 당일 빵은 다음날 팔지 않다 보니 늘 빵이 남았다. 맛있는 빵이 남는 날이면 이 빵을 누구에게 가져다줄까 하고 고민을 했다. 1순위는 우리 빵을 대서 먹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었다. 비록 어제 빵이라 하더라도 빵을 가져다주면 늘 반가워했기 때문에 제일 먼저 챙겼다.
가족들의 모임이 있는 날에도, 친구들이 모일 때도 영락없이 커다란 빵봉지를 들고 갔다. 이때부터 누군가에게 먹을 것을 해다 주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사람들은 음식보다 돈 봉투를 좋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누군가를 위해 요리할 때는 공연히 콧노래까지 나온다. 게다가 맛있게 먹어주고 칭찬까지 해주면 돌아올 때부터 다음에는 무엇을 해다 줄까 하고 고민한다.
그저 늘 피곤하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