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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May 27. 2024

툭하면 터지는 빵집 사건사고

당시 나의 근무시간은 몇 시간쯤이었을까?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는 아침 9시경에 나가 빵포장 등을 도와주다가 점심때 들어와 잠깐 쉬다가 다시 매장 직원이 퇴근하는 5시경에 나갔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점심시간에 잠깐 들어가 직원들 식사하게 하고는 오후 5시쯤 가게에 들어갔다. 그러니 남이 보기에는 별로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에 있다고 해서 편히 쉬는 게 아니었다. 갑자기 기계가 고장이 난다거나 직원이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갑자기 주문이 들어와 일손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달려 나갔다.


오랫동안 빵장사를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카스텔라에 계란껍데기가 들어갔다고 들고 오고, 케이크 맛이 좀 이상한 것 같다며 먹고 난 한 귀퉁이 들고 와 환불해 달라기도 하고, 곰팡이가 났다고 들고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왜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곰팡이가 나지 않냐며 방부제 넣은 것 아니냐며 빵을 카운터에 패대기치는 사람까지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손님들께 허리 굽혀 사과해야 했고 당장 가게를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많았다.


물론 우리가 부주의 해 생긴 일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억울할 때도 없지 않다. 여름이면 수분이 많은 빵을 팔다 보면 다음날이면 쉽게 곰팡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부제라니! 슈퍼에 유통하는 빵 이면 모를까 제과점에서는 절대로 방부제를 쓰지 않는다. 내가 방부제가 어떤 것인지 알았다면 왜 다른 빵에서 곰팡이가 났을까?  아마도 밀가루를 수입할 때 어떤 처리를 하는 것 같다. 그런 걸 제대로 알았더라면 손님들한테 잘 설명을 했을 텐데 말이다. 롤케이크나 과자류 등은 2,3일씩 팔았던 게 사실이지만 빵은 그날 팔다 남으면 늘 지인들이나 주 거래처인 어린이집 등에 서비스로 가져다주곤 했다.


나는 늘 몸이 피곤하고 아팠다. 하루는 치료를 위해 방배동까지 갔을 때다. 그때 젊은 아가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 엄마가 우리 집 빵을 먹고는 배탈이 나서 누워 있으니 당장 달려와 사과하란다. 나는 정신없이 달려왔고 음료수 등을 사가지고는 그 집까지 찾아갔다. 평상시 얌전한 그 엄마는 가끔씩 봐왔지만 그 딸은 처음이다. 물론 나라도 우리 엄마가 그 집 빵을 먹고 탈이 났다면 이토록 난리를 쳤겠지만 그 딸도 보통은 아니었다. 난 그 후 며칠 동안이나 그 딸에게 시달렸다. 정말 먹는장사라는 게 쉽지 않다. 


내가 처음 빵집을 시작했다고 하자 오랫동안 장사를 해오신 시댁의 작은 어머님께서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 하시며 혀를 차실 때 알아챘어야 했다. 물론 제품 관리를 제대로 못해 간혹 실수를 저지를 때도 있었지만 정말 우리 가족에 대한 마음보다도 더 성심껏 손님에게 맛있는 빵을 값싸게 팔려고 노력했던 것은 사실이다.



손님과의 일만 터지는 게 아니다. 직원들 밥을 해주던 아주머니께서 하루는 게요리를 잘못해 주셨다. 아침부터 연락을 받고 가게에 가보니 공장 식구들 모두 식중독에 걸려 2층 병원에 가서 누워있었다. 조리대 위의 빵반죽은 부풀 대로 부풀어 조리대 밑으로 마구 떨어지고 정말 난리도 아니다. 직원들은 그 아픈 몸으로 번갈아 가며 내려와 잠시 빵을 만들다가 올라가기를 반복하고 나는 병원과 매장을 오가며 종일 쩔쩔맸다. 그 후 게만 보면 그때 생각이 나서 지금도 게요리가 먹고 싶지 않다.


또 하루는 공장장이 화상을 입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기절초풍을 해서 가보니 누군가 출출하던 차에 소시지를 기름통에 넣어두었던 것 같다. 그걸 모르고 도넛을 튀기려다가 그 소시지가 터져 기름이 얼굴로 튄 것이다. 그 후 며칠 동안 영등포 어딘가의 화상 병원으로 공장장을 데리고 출퇴근을 해야 했다.


또 어디 그뿐인가? 몇 년 장사를 하다가 월세를 조금이나마 줄이려고 공장을 없애고는 매장에서 빵을 구웠다. 그러다 보니 장소가 좁아 가게 앞의 테라스를 임의로 확장해서 오븐기를 내놓았다. 그런데 이런 것을 꼭 신고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내가 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상가를 한 바퀴 돌다 보면 여기저기에 불법으로 가게를 확장시켜 쓰고 있는 일이 허다하다. 그 사람은 왜 다른 상가는 놔두고  우리 집을 신고 했을까? 구청에 가서 다른 집도 확장해서 쓰지 않냐며 말도 안 되는 항변도 해봤지만 자기네도 신고가 들어오면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주 심술 맞게 생긴 그 두 부부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다. 나는 그 후 그 가게 앞을 지나칠 때면 힘껏 째려보며 지난다.


갑자기 목동아파트로 이사 온 우리는 처음에는 전세로 왔다가 그 집을 샀다. 상가에는 두 개의 인테리어 가게가 있었다. 처음 전세로 입주할 때는 도배장판만 했기 때문에 한 인테리어 가게에 맡겼는데 다음에 리모델링할  때는 더 잘하는 업체에 맡겨야 해서 건너편 가게에 공사를 맡겼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가게에 리모델링을 맡겼다는 것을 알아챈 먼저 가게 주인은 그 뒤 우리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나를 노려보며 가게에 가래침을 냅다 뱉고 가는 것이다. 기가 막히기도 하고 또 무섭기도 해서  지금도 길을 가다 그 사람을 만나면 삥 돌아 다른 길로 간다. 어찌 인테리어 가게뿐이겠는가? 미장원도 둘이요, 부동산 중개소도 여럿이니 어느 한 곳을 다닐 수가 없어 일부러 먼 곳으로 다녔다. 


큰 딸이 대학을 졸업해서 집에 있을 때다. 손님들이 신용카드도 많이 썼지만 잔돈도 필요했기 때문에 늘 잔돈을 준비해 두었다.  당시 딸이 가게 일을 도와줄 때였다. 서둘러 나오던 딸은 그만 그 잔돈 가방을 길에 흘리고 말았다. 딸은 가게에 들어가 가방을 찾고 또 찾다가 내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이곳저곳을 찾다가 길에 흘린 것 같아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CCTV 좀 보자고 했다. 아 그런데 딸이 뛰다가 지갑을 놓쳤고 여러 사람이 모르고 지나다가 어떤 남자가 발로 툭 차더니 돈이 와르르 쏟아지는 것을 보고는 얼른 챙겨가는 것이 또렷하게 잡혔다.  그런데 문제는 CCTV가 주로 아파트 안에만 있고 도로에는 없었다. 어느 도로로 그 사람이 건너갔는지 또 어느 동으로 들어갔는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나의 끝없는 탐색으로 드디어 그 사람을 찾아냈다.


"이 사람이네요" 하고 가리키자 관리사무실 직원들은 다들 그 사람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바로 동대표였기 때문이다. 관리소 직원들은 바로 그 사람에게 연락했지만 처음에 그 사람은 오리발을 내밀었다. CCTV를 보여주며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한 뒤에야 겨우 돈을 내놓았다. 물론 그 사람은 돈 주인이 나인줄은 모른다. 사실 나였어도 카드도 아닌 현금 다발을 주웠다면 혹했을 것이다. 웃으며 땡잡은 줄 알았다고 말했으면 그냥 지나칠 일을 오리발을 내밀다가 관리사무실 사람들에게 크게 망신을 당하고 만 것이다.


지금은 그때의 일들을 재미 삼아 회상해 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방방 뛰었다녔는지 모른다. 가끔 이런 일들이 떠오를 때면 지금 이렇게 신경 쓰지 않고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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