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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ul 15. 2024

환장하겠네!

“환장하겠네”

버스 뒷좌석에서 들리는 말 한마디에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이 한 마디를 외치던 그와의 만남은 채 6개월을 넘지 못했지만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는 빵집을 하기로 마음먹고 체인 사장이 소개해 준 첫 공장장이다. 처음 만났을 때 티셔츠에 청바지를 걸치고 나온 것이 인상이 좋았다. 빵집을 하려면 무엇보다 빵이 맛있어야 한다.  그는 자기 빵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었다. 새로운 빵이나 과자를 설명할 때는 한층 눈에 힘이 들어가며 목소리도 커졌다. 

     

나는 제품이 나올 때마다 미묘한 맛에 감탄하며 공장장을 만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제과제빵을 배울 때 하얀 밀가루 반죽이 발효기에서 터질 듯 부풀어 올라 오븐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것을 볼 때의 뿌듯함과 같았다. 

      

그는 가게에 오자마자 여러 가지 과일을 잘라 뭔가를 넣어 만들며 ‘슈톨렌’에 들어갈 재료라며 눈을 반짝였다. 아마도 슈톨렌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나 보다. 솔직히 빵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과일이 숙성되어 알코올 맛까지 느껴지는 새 빵이 취향은 아니었으나 독특한 맛에 빵을 찾는 사람도 있었다. 

    

화려한 무쓰케이크에서 세밀한 초콜릿 모형물까지 희한한 제품을 만들어 주면 내 어깨는 하늘 높이 올라갔고 고객들이 신기해하며 눈이 커질 때 절로 흥이 났다. 

       

공장장은 날 참 싫어했다. 자기네가 열심히 만들어 준 빵을 제대로 팔지 않아서다.

“유명 빵집에서 덤 주는 거 봤어요? 제발 그만 좀 줘요”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을 느꼈지만 난 무시했다.

“주변에 많은 빵집 놔두고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그까짓 빵 하나 더 주는 게 어때서?”  

공장장은 빵만 맛있으면 팔린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맛만으로 승부하기에는 주변에 경쟁 빵집이 너무 많았다. 단번에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내 마음은 급하기만 했다. 공장장은 이런 내 마음을 몰랐다.

       

몇 년 후 지금도 여러 곳에 체인점을 내고 성업 중인 개인 빵집이 바로 건너편에 들어왔다.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던 빵집이 문을 닫고 겨우 안정이 되었을 때라 정말로 불안했다. 그 집은 공장장이 원하던 스타일대로 영업했다. 도도하고 불친절하기까지 했다.  예상대로 3 년을 버티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내가 복잡한 주문을 할 때도 공장에서 빵이 잘못 만들어졌을 때도, 이상한 손님이 올 때도 “환장하겠네”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 말만 들으면 매장 직원과 나는 낮게 따라 하다가 웃음이 터져 나와 어금니를 꽉 깨물어야 했다. 

       

하루는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는 가게를 이리저리 돌아보다가 

“남편은 아직 안 나오셨나 봐요”

그녀는 공장장이 내 남편인 줄 알았나 보다.

“우리 남편은 출근했고 그 사람은 직원이에요” 

잠시 후 공장장이 매장에 왔을 때 놀리듯 그 말을 전하자 영락없이 들려온다. “환장하겠네”

하긴 내가 열 살 정도 많았으니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      

   

늘 꾀죄죄한 모습만 보여 주더니 하루는 말끔하게 정장을 하고 나타났다. 그가 그렇게 잘 생긴 줄 그날 처음 알았다. 우리는 잘 생겼다며 박수를 쳐주자 머쓱한지 창밖을 보며 또 “환장하겠네”. 

아마 그날 데이트가 있었나 보다. 그렇게 멋진 모습으로 출근하면 아줌마 팬도 생겼으련만 왜 늘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요란하게 개업식을 끝내고 서서히 오픈 빨도 끝나자 열 명 가까이 되던 공장 직원들은 차츰 5명까지 줄었다. 빵 종류가 워낙 많아 남은 직원들은 빵을 채워 넣기 바빴으나 공장장은 점심때나 되어서야 출근해서는 뭔가 독특한 빵 한두 개를 만들고는 바로 사라졌다.

         

어느 날 직원 하나가 너무 피곤했는지 쓰러지고 말았다. 사장인 나도 출근했는데  공장장은 그때까지도 출근하지 않은 것을 보고 나는 벌컥 화를 냈다.

“사모님은 일하는 공장장을 원하세요?”

라며 정작 다른 직원들은 도리어 나를 탓했다.     


다른 직원들보다 월급을 몇 배나 받으면서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반 회사에서도 상사는 도장만 찍을 뿐이지만 여기는 회사가 아니고 그렇게 지시만 내릴 정도로 큰 빵집도 아니지 않은가?       

과도한 월세와 인건비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하루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한 사람 줄이면 안 될까?”

팀으로 다니는 사람들에게 그 말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도 가게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바로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들과 헤어지겠다는 말이 절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겨우 친숙해진 사람들과 헤어졌고 모르는 사람들과 다시 호흡을 맞춰야 했다. 팀이 바뀌면 빵맛도 변했다. 다른 팀이 올 때마다 첫 팀의 빵맛이 떠올랐다.     


가끔 그들이 보고 싶다. 이렇게 말 한마디에 떠오르는 사람도 있고 콜라만 봐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감자탕을 보면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들도 내가 보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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