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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un 26. 2024

베이비슈 같이 바삭하고 부드러웠던 공장장

한공장장을 소개해 준 사람은 바로 전 팀의 공장장으로 여러 가지로 서로 맞지 않아 덜그럭거렸던 사람이다. 끼익 하는 요란한 마찰음과 함께 가게 앞에 오토바이가 멈춰 서고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던 직원을 처음 봤을 때부터 내 가슴은 심하게 요동쳤다. 만남부터가 악연이었다고나 할까?     


어느 날은 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바로 그때, 쇠로 만든 스크레이퍼가 매장으로 날아왔다. 공장장이 화가 나서 작업대에 던진다는 것이 매장까지 날아온 것이다. 나는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그들이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월급을 주기 위해 공장장의 은행 계좌번호를 물어 첫 달에도 다음 달에도 같은 계좌로 입금을 했다. 두 번째 월급이 들어갔던 날,

"아니 벌써 입금했어요?"

알고 보니 그 계좌는 연금인지 보험료인지를 자동 이체하는 계좌였다. 나 덕분에 그동안 밀렸던 돈을 성실하게 납부한 것이다. 

"아니 진작 이야기를 했으면 이달에는 입금하지 않았을 거 아녜요? “     


밥 해주는 아줌마가 쉬던 날 난 직원들을 위해 다양한 쌈채소를 준비해 정성껏 점심상을 차렸다. 

“아니 이 쌈을 뭐랑 먹어요?”

젓가락으로 채소를 퍽퍽 찍어대며 불만 가득한 소리를 냈다. 그들에게 쌈이라는 것은 고기와 함께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무례하게 굴 수가 있는 걸까?  

   

공장 직원 중 하나가 형제 상을 당해 집에 갈 때였다. 부의금을 보내야 하는데 부모도 아니고 형제일 때는 얼마를 해야 하나 하고 망설이다 부의금을 전하지 못했다. 며칠 뒤 화가 잔뜩 난 공장장은 여기서는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단다. 아마도 부의금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가 나가면서 소개해 준 사람이 바로 한 공장장이다.       

한공장장과 함께 강남 유명 빵집을 순례할 때다. 그때는 내 운전 실력이 시원치 않아 지하철로 이동했었다.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 우리는 같이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돌아보니 그는 잔뜩 긴장해 몸을 뻣뻣하게 세운 채 혹시라도 자기 몸이 내게 닿을세라 버티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기분이 어찌나 나쁜지 그냥 후딱 내리고만 싶었다.


나보다 서너 살 아래였던 그는 

"사모님, 저기 저……. 내일 집에 좀 다녀오려고요"

온몸을 비비 꼬며 양 볼까지 붉히고 있다.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홀로 서울까지 와서 일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 저렇게 설레며 집에 가는 것을 와이프는 알기는 하려나?  

    

처음에는 좀 낯설기도 하고 뭐 저런 남자가 있나 싶기도 했다.  베이비 슈처럼 톡 건드리면 바로 부서져 가득 찬 크림이 마구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사람이었지만 내게는 참으로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빵도 만들어 주고 잘도 따라 준 덕분에 우리 가게는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긍게요……."

삐딱하게 모자를 눌러쓴 한공장장은 손으로는 열심히 빵을 만들면서 눈은 저 멀리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느려터진 그에게 물어본 우리가 잘못이다. 벌써부터 대답을 들을 생각도 안 하고 우리는 빵 포장을 하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바로 그때 앞 동 경비아저씨가 창밖으로 지나갔다.

"저 아저씨요. 어제 빵 두 개 사러 와서는 천 원짜리 두 장을 카운터에 패대기치는 거예요. 주민들에게는 그렇게 굽실거리면서 빵 하나 사가면서 너무 심한 거 아녜요?"

그때 그가 뭐라고 중얼거린 것 같기도 하다.    

   

"물어봐 놓고는 듣지를 않아……."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친정이 충청도라 그동안 충청도 사람을 많이 봐왔지만 저렇게 느린 사람은 처음이다. 성질 급한 나는 종종 공장장에게 질문했다가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돌아섰다.      

당시 전에 왔던 팀이 스스로 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그만두라는 말도 못 하고 얼마나 냉가슴을 앓으며 살았을까? 게다가 찰떡궁합인 한공장장까지 소개해 주었으니 정말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한공장장은 큰 체인 사업체에 빵을 대는 사장이 되어 고향으로 내려갔다. 좋은 일로 떠나니 축하해 줄 일이었고 나도 경영상 워낙 고정 지출이 많아 규모를 좀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고맙기 짝이 없었다.     

 

그 후에도 그는 느닷없이 전화해서는 인생 상담을 해오곤 했다. 나보다야 그가 빵 업계를 훨씬 더 잘 알 텐데 내게 물어보다니! 그는 내가 믿음직했던 것일까? 그저 객관적인 입장에서 답을 해줬지만 도움이 되기는 했을까?     


웃으면 눈이 일자가 되고 발그레하게 홍조까지 띠던 그는 지금도 잘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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