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왔니? 등에 몸을 바짝 붙인 녀석은 발랑 뒤집어진 채 잠이 들어 이제는 코까지 골고 있다. 환갑 선물로 우리 집에 온 귀여운 몰티즈 ‘달콩이’는 온통 하얀 털을 뒤집어쓰고는 까맣고 동그란 두 눈만 반짝인다. 빨간 혀를 반쯤 내놓고 쳐다보기라도 하면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달려가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그게 너무나 싫은 달콩이는 되도록 저만치 떨어져 있거나 내가 뭔가에 빠져 있을 때만 슬그머니 등 뒤로 온다. 그러다 껴안기라도 하면 그 작은 발로 사정없이 가슴을 누르며 고개를 뒤로 젖히는데 발힘이 어찌나 센지 한참 힘겨루기를 하다 보면 가슴팍이 아프다.
원래부터 강아지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강아지를 아기처럼 안고 다니며 쭉쭉 빨아대는 사람들을 보면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었다. 그랬던 내가 달콩이를 예뻐하게 된 것은 빵집 할 때 잠시 우리 집에 왔다 간 ‘다롱이’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때문이다.
요즘 새내기 엄마들은 육아휴직을 아끼고 아꼈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쓴단다. 바로 그때 빵집을 시작했다. 첫째도 아니고 둘째 딸의 초등학교 입학보다는 거액을 투자해 막 시작한 빵집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게 온통 빵집만 보였으니 둘째 딸도 다롱이도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저 밤늦게까지 할머니와 외롭게 있을 딸에게 위로가 되어 줄 친구가 필요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참 매정했다. 아니 너무 몰랐다. 다롱이에게 사료 이외에 그 흔한 간식 하나 사 준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였는지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다 생선을 굽고 찌개를 끓이다 보면 그 녀석이 언제 왔는지 프라이팬에 있는 생선을 냉큼 먹어 치웠다. 또 가게에서 일하다 잠시 쉬려고 집에 들어와 보면 배가 고팠는지 심심했는지 쓰레기통을 뒤져 온 얼굴이 쓰레기 범벅이 되어 있기도 했다.
톰과 제리처럼 빗자루를 들고 소리를 지르며 그 녀석을 쫒았다. 다롱이는 쏜살같이 내 손이 닿지 않는 소파 저 구석에 틀어박혀서 으르렁대는 바람에 늘 두 손을 드는 건 나였다. 그런 날이면 영락없이 그 녀석은 내 침대에 오줌을 쌌다. 침대는 점차 다롱이의 오줌 자국으로 세계 지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렇게 다롱이와 옥신각신 지내는 사이였지만 집에 단 둘이 있으면 그 녀석은 슬그머니 다가와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내 눈치를 살피다 내가 웃으며 쳐다보면 꼬리를 심하게 흔들다가 배를 하늘로 향한 채 아양을 떨었다. 하지만 둘째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제 그랬나 싶게 내게 으르렁대며 딸 옆에는 가지도 못하게 했다. 생김새로 따지면 달콩이 못지않게 다롱이도 참 귀여웠다. 예뻤지만 그 녀석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점심때는 직원들이 우리 집에 와서 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했다. 직원들의 신발에서 빵 냄새라도 나는지 다롱이는 그들의 운동화를 물고 뜯으며 놀기를 좋아했다. 그러다 운동화 주인에게 얻어맞기도 했다. 현관문을 제대로 닫지 않으면 12층이나 되는 아파트 계단을 돌고 돌아 집을 나가기도 했다. 몇 번이나 집 나간 다롱이를 찾아왔다.
하루는 안양천에 온 가족이 산보를 나갔다. 다롱이는 미친 듯이 풀밭을 뛰어다녔다. 모처럼 나온 산책도 좋았겠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모두 함께여서 더 좋았을 게다. 그토록 좋아하는 산책을 함께하는 것은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았다.
한참 자전거를 배운다고 정신이 없을 때다. 문을 살짝 열어둔 채 준비물을 챙기던 나는 다롱이가 집을 나간 것을 몰랐다. 그리고 두 시간쯤 지나 집에 돌아왔을 때 다롱이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하지만 바로 가게에 나가야 했고 어떻게 찾아볼 재간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 어두워진 후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왔고 그제야 아파트 주위를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왜 그때 빵집 앞에 벽보 하나 붙일 생각을 못했을까? 그랬다면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후 몇 달 동안은 빵집 앞으로 몰티즈가 지나가기만 하면 무작정 뛰어나가
“그 집 강아지 맞나요?”
하고 묻다가 어색해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 작은 딸은 영어교육을 위해 캐나다에 갔었다.
“엄마 다롱이 잘 있지?”
낯선 캐나다 가정에서 지내야 했던 딸은 영어 한 마디도 제대로 못했으니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두어 달 동안은 궁금해서 전화만 하면 딸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울기만 했다. 그런 딸에게 강아지가 집을 나갔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 지금 다롱이 뭐 해?
“엄마 발 물어뜯고 있지”
딸은 엄마아빠보다도 강아지를 떠올리며 낯선 타국 생활을 이겨냈을 것이다. 거짓말은 딸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올 무렵 우리 가족은 핑계 김에 캐나다로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야 다롱이가 집 나간 사실을 말했고 서울에 오도록 그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 후에도 딸은 공연히 울적하기만 하면 다롱이를 찾아내라고 생트집을 잡았다.
하루는 아파트 앞에서 노점상을 하는 아주머니가 다롱이와 딱 닮은 몰티즈를 안고 빵을 사러 왔다. 그분이 몰티즈를 키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미 이삼 년이나 지난 일이라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롱이가 길을 잃고 헤매다 거기까지 갔을 수도 있었겠다.
“그래, 죽지 않고 여태 저 아줌마의 사랑을 받고 살았으면 되지. 그 강아지가 다롱이라고 한들 이제 와서 데려올 수도 없지 않은가?”
요즘도 가끔 달콩이와 산책하다가 그 아줌마를 만난다. 혹시 전에 데려왔던 강아지가 길 잃은 강아지 아니었냐고 묻고 싶어 발걸음을 멈추지만, 벌써 10년도 훌쩍 지났고 그 녀석은 이미 저 세상에 갔을지도 모르는 것을.
요즘 우리 부부는 달콩이의 재롱을 보는 재미에 산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밖에 안 하는 엄마를 위해 데려왔지만 산책은 주로 남편과 한다. 그 녀석에게 엄마는 간식을 주는 사람이다. 뭔가 먹고 싶으면 내 다리에 코를 콩콩 박거나 하염없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본다. 그 모습이 하도 예뻐 수시로 간식을 주다가 쓰레기 범벅이 되어 있던 다롱이 얼굴이 떠오른다.
“다롱아 정말 많이 미안했어. 부족했던 엄마를 용서해 줄 수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