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할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가게의 위치다.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상가는 나 같은 초보자가 빵집을 운영하기에 비교적 안정적이다. 게다가 주변에 학교와 유치원까지 여러 개 있다면 엄지 척하지 않을 수 없다.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고 있을 때 체인 사장이 추천해 준 곳이다. 아마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의 체인점 하나를 이곳에 내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 집과 거리도 가깝고 자리도 마음에 들었지만 권리금을 1억 원 넘게 달란다.
가게 앞에서 며칠 동안 살펴보았지만 손님은 별로 없었다.
“저런 자리의 권리금을 그렇게나 달라고?”
마냥 망설이고만 있자 체인 사장은 집요하게 설득했다.
“세대수가 삼천 가구나 되니 보통 4인 가족이라면 이곳에 만이천 명이 살고 있는데 열두 달로 나누면 한 달에 케이크가 천 개가 필요해요. 현재 빵집이 세 개나 있다고 해도 최소한 사백 개 이상은 팔 수 있어요. 저 가게가 저런 것은 저 사람들이 운영을 잘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 말만 믿었다. 거액의 프리미엄을 주고 빵장사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소리 없는 골목전쟁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신경이 쓰였던 곳은 바로 마주 보고 있는 건너편 빵집이었다. 상권이 죽은 가게를 살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체인 사장이 시키는 대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고급 재료로 빵을 만들었고 그저 ‘손님이 왕’이라고 생각하며 온 정성을 다했다. 이삼 년 후 건너편 빵집은 손을 들었고 다음에 유명 빵집이 다시 들어왔다. 초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가게가 문을 열던 날도 아파트 단지가 떠들썩했지만 그 집이 개점하던 날도 그에 못지않았다. 가만히 앉아 남의 잔치를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우리도 같이 잔칫상을 벌였다.
VIP고객을 대상으로 ‘셰프와 함께 케이크 만들기’라는 행사를 주최했다. 당연히 반응은 뜨거웠다. 공짜로 케이크를 만들어가게 했으니 신청자도 많았다. 풍악은 건너편에서 울리고 있었지만 짭짤한 행사는 우리 쪽에서 이뤄졌다. 그날 매상도 많이 떨어지지 않았고 동네 빵집에서 열리는 풍성한 잔치로 고객들의 신뢰도도 한층 높아졌다. 고객들이 건너편 가게로 넘어가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나 혼자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행사였다.
게다가 새로 온 건너편 빵집의 여사장은 불친절했다.
“이 동네 사람들은 거지 근성이 있어”
공공연히 불평을 늘어놓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이곳 사람들이 소비에 있어서 짠 것은 사실이지만 다르게 이야기하면 알뜰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 번째 경쟁자도 쉽게 사라졌고 또다시 제빵사들이 운영하는 빵집이 들어왔으나 이미 어느 정도 고객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때 가게를 팔라고 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내가 빵집을 했던 것은 돈이 필요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직장 퇴직 후 집에서 놀기 심심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는데 정상 궤도에 오른 빵집을 접을 이유는 없었다.
하루는 어떤 노신사가 직원들이 한참 일하고 있는 시간에 불쑥 찾아와서는 나보고 가게를 팔란다. 그런 말은 슬며시 나를 밖으로 불러내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불안하게 바라보는 직원들 앞에서 나는 크게 소리를 쳤다.
“10억 가져오세요.”
슬쩍 돌아보니 직원들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대고 있었다.
그 후 몇 년 동안은 큰돈이 벌리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장사를 해나갔다. 하지만 쉬는 날 없이 이어지는 길고 긴 장사로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집안도 엉망인 데다 은행 다닐 때 받던 월급의 반도 안 되는 돈을 벌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 저쪽 건너편에 대형마트가 생기며 그쪽에 있던 빵집이 두 개나 없어졌다. 균형을 이루고 있던 상권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이게 웬일이야!”
우리 가게도 팔라는 사람이 줄을 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드디어 기회가 왔는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어렵게 가게를 그만 두기로 결심을 하고 나갔는데 건너편 빵집에서 집기들을 빼고 있었다. 다른 업종이 들어온단다. 그렇다면 남은 빵집은 우리 집뿐이다. 당장 거래를 취소했다. 대박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하찮게 여겼던 대형마트의 등장은 사람들의 동선을 서서히 바꾸어 놓았다. 마트가 생긴 후, 마트에서 파는 빵이 맛있을 리가 없는데 고객들은 부동산만 가득한 우리 상가까지 빵 하나를 사러 일부러 건너오지는 않았다. 슬금슬금 매상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원재료의 가격도 계속 오르고, 믿었던 직원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자 빵집 운영은 차츰 어렵게 되었다. 그제야 다시 매물로 내놨지만 그렇게 팔라고 조르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뒤였다.
때마침 월세 좀 내려달라고 상가주인에게 부탁을 했지만 내려주기는커녕 도리어 월세를 올려달란다. 그 근처에서 가장 비싼 월세를 주고 있는데 말이다. 모든 원망은 주인에게 쏠려버렸다. 투덜거리며 이런 사정을 이웃 상가 사람들에게 털어놓자 혀를 차며.
“10 년 넘게 한 번도 월세를 밀리지 않았다고? 월세를 밀리며 애를 태웠어야지. 꼬박꼬박 월세 주는 세입자에게 깎아주는 주인이 어디 있어?”
그 후 1 년 가까이 월세를 미뤘다. 참다못한 상가 주인은 내용증명을 작성해 들고 왔다. 그렇지 않아도 천불이 나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기름을 쏟아부은 것이다. 상가주인이 돌아가고 나서 혼자서 마구 화를 냈더니 갑자기 가슴이 심하게 뛰며 정신이 아득해지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까짓 권리금 회수하려다 이렇게 죽는 거 아냐?”
다음 날 상가 주인에게 그 달까지만 장사를 하겠다고 통고를 하고는 그냥 셔터를 내려버렸다. 그렇게 기다려도 오지 않던 장사꾼들은 그제야 찾아왔다. 내가 애초에 지불했던 프리미엄의 반의반도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덕분에 조금이나마 회수할 수 있었다.
이 골목전쟁에서 나는 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