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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스마트폰 - 터치의 거리

제5화

by 스윗드림

요즘 카페를 가면,
젊은 사람들은 조용히 화면을 스크롤한다.
엄지는 빠르고, 눈은 분주하다.
그 옆 테이블에 앉은 노인은
작은 화면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린다.
하지만 화면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이게 왜 안 눌리지?”
그는 손가락을 꾹 눌러본다.
그러다 갑자기 광고창이 떠버린다.
“어휴, 또 이상한 게 나왔네.”
웃으며 넘기지만,
그 웃음 뒤에는 ‘세상이 너무 빨라졌다’는 자각이 숨어 있다.


스마트폰은 세상을 연결시키는 도구지만,
그 연결의 속도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젊은 세대는 ‘터치’로 세상을 바꾸지만,
노년 세대에게 터치는 낯선 벽이다.


화면의 감도는 너무 예민하고,
글씨는 작고,
버튼은 너무 많다.
‘닫기’를 누르려다 ‘구매’를 누르고,
‘뒤로가기’를 찾으려다 홈으로 나와버린다.


아버지는 가끔 나에게 말한다.
“이거 손이 말을 안 들어.”
그건 손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너무 터치식으로만 돌아가는 문제다.


예전엔 손으로 눌러야 했던 버튼들이

이젠 ‘가볍게 스치기만 해도’ 반응한다.
기계는 점점 더 민감해지고,
사람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진다.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아이러니다.


노년층에게 터치는
‘기술과의 거리’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들의 손끝은 살아온 세월의 굳은살로 덮여 있다.
그 손끝은 논을 갈고, 아이를 키우고,
삶을 직접 부딪히며 살아온 흔적이다.
그런 손끝이 화면 앞에서 무력해질 때,
세상은 너무 쉽게 ‘사용자 불편’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건 불편이 아니라 배제의 시작이다.
기계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터치의 온도, 손의 속도, 습관의 차이 —
이 모든 것은 시스템이 고려하지 않는 인간의 감각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스마트폰 화면이 손의 온도에 반응한다면,
그들의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까.


노년층에게 필요한 것은
‘사용법 교육’이 아니라 ‘존중의 인터페이스’다.
누가 더 빠르게 터치하느냐보다,
누가 더 오래 머물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한 세대는 손끝으로 세상을 밀어내고,
또 한 세대는 그 세상을 조심스레 더듬는다.
그 사이에 있는 건 단순한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세상을 느끼는 방식의 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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