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화면 속 문구가 너무도 가볍게 물어왔다.
하지만 그 문장 하나가,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과 단절되는 문턱이 된다.
요즘은 은행도, 병원 예약도, 주민센터 민원도
모두 ‘로그인’이 필요하다.
휴대폰 인증, 공인인증서, 간편인증, 공동인증…
이 모든 단어는 60대 이후 세대에게는
하나의 암호문처럼 느껴진다.
“휴대폰으로 인증하세요.”
“앱을 깔고 본인 확인을 해주세요.”
말은 쉽지만, 그 ‘앱’을 찾는 것부터가 전쟁이다.
글씨는 작고, 절차는 길고,
한 번 잘못 누르면 처음부터 다시다.
결국 많은 어르신들은 포기한다.
은행 창구에 직접 가고,
줄을 서서 기다리며,
직원에게 부탁한다.
“나 이거 로그인 좀 해줘.”
그 순간, 그들은 조용히 깨닫는다.
이제 세상은 ‘디지털 언어’를 못 하면
살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다는 걸.
나는 예전에 아버지의 휴대폰에
‘정부24’ 앱을 깔아드린 적이 있다.
“이걸로 건강보험증도 볼 수 있어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후로 단 한 번도 그 앱을 켜지 않으셨다.
며칠 전, 집 문 앞에 놓인 고지서를 보고 물었다.
“앱으로 보면 편하지 않아요?”
그는 말했다.
“나는 종이가 더 믿음이 가.
화면은 금방 사라지잖아.”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디지털 세상은 빠르고 정확하지만,
그만큼 ‘손에 잡히지 않는 불안함’이 있다.
로그인을 하고, 인증을 마쳐도
언제 로그아웃될지 모르는 세계.
노년층이 로그인하지 못하는 건
기술을 몰라서만이 아니다.
그들은 ‘믿을 수 있는 세계’를 잃고 싶지 않다.
버튼 하나로 지워지고, 이동하고, 사라지는 세계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건네받는 확실함이 좋다.
젊은 세대에게 ‘로그인’은 일상이고,
노년 세대에게 ‘로그인’은 통과의례다.
한 번의 실패가 자존심을 건드리고,
몇 번의 오류 끝에 그들은 말없이 멈춘다.
“그냥 다음에 하지 뭐.”
하지만 디지털 행정의 물결은 멈추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어떤 세대는 점점 뒤로 밀린다.
이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다.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 바뀐 사회의 초상이다.
화면 너머의 세상은 점점 닫히고,
그 문 앞에서 “로그인하지 못한 세대”는
오늘도 기다린다.
누군가 그들의 아이디를 찾아주기를,
그 문을 다시 열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