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햄버거 가게 앞.
점심시간을 피해 갔는데도, 입구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그 줄의 목적지는 계산대가 아니라 키오스크였다.
화면 앞에 선 사람들은 손끝으로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중 한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 어디 눌러야 해요?”
직원은 “여기요, 여기요!” 하며 빠르게 손가락으로 화면을 눌렀다.
그 순간 화면이 바뀌자, 할아버지는 잠깐 멈췄다.
“아니, 방금 그건 뭐야?”
하지만 이미 결제창이 열리고 있었다.
그 몇 초의 당황스러움 속에,
나는 기술이 얼마나 조용하게 사람을 ‘소외’시키는지 봤다.
기계는 말이 없고, 설명도 길지 않다.
정해진 순서, 정해진 속도, 정해진 반응만이 존재한다.
그 리듬에서 벗어난 사람은 ‘뒤처진 사람’이 된다.
이제 우리는 모두 그 기계 앞에서 줄을 선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메뉴를 고르다 보면 뒷사람의 시선이 느껴진다.
빨리 눌러야 할 것 같고, 망설이면 방해가 되는 느낌이 든다.
편리함을 위해 만든 시스템이 오히려 불안과 압박을 만든다.
예전엔 “어서 오세요”라며 눈을 마주치던 계산원이 있었다.
그 한마디가 피곤한 하루를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어주곤 했다.
이제 그 인사는 사라지고,
대신 ‘결제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음성 안내가 귓가를 메운다.
정확하지만, 따뜻하지 않은 말.
노년층에게 키오스크는 여전히 낯설다.
그런데 이제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사회적 참여를 제한하는 장벽이 되었다.
“그냥 사람 있는 데 가서 주문하고 싶어요.”
어떤 어르신의 그 말에는
‘나는 이 시스템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체념이 섞여 있었다.
젊은 세대는 기술의 흐름 속에서 자라났다.
버튼을 누르며 성장했고,
‘빠름’이 능력인 시대에 적응했다.
하지만 기술이 빠르게 진화할수록
인간의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편리함과 배제는 언제나 같은 속도로 자란다.
키오스크 앞의 줄은 단순한 줄이 아니다.
그건 세대 간의 간극, 기술과 인간 사이의 거리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그 줄의 뒤편에 설 날이 올 것이다.
손끝이 떨리고, 화면이 낯설어진 어느 날.
그때 누군가 “도와드릴까요?” 한마디 건네준다면
그 세상은 아직 괜찮은 곳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