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2015년을 완성하는 패션산업과 사람들
새벽 2시 반이 넘었다.
택시를 타고 핸드폰을 켜니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집에 가면 3시.
씻고 자려고 누우면 4시.
한 3~4시간 자겠네.
속으로 혼자 말하며, 뒤통수와 뻐근한 어까와 등을 를 택시 시트에 기대고 졸린 눈을 꿈뻑이며 집으로 향한다.
2021년 9월 초 정도였던 것 같다.
이맘때,
그러니까 8월 15일이 지난 이후 8월 말&9월 초엔 패션산업이 들썩인다.
본격적인 계절이 바뀌고,
하반기 매출 성패의 시작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시즌도 시작되고,
하반기 사업계획서 수정으로 머리를 싸매기도 한다.
굵직하게는 이렇게,
이 속에 수많은 자잘한 업무 건들로 정신없는 시기이다.
그 해 F/W(가을/겨울) 오픈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스토어 스태프들은 6시부터 시작해 약 10시 정도쯤 마쳤을 것이다.
대표, 이사, 나 셋은 10시쯤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지막 점검을 위해서다.
스토어마다 제품별 위치와 모양새, 인테리어 구성 등을 살핀다.
구성원 모두가 준비한 마지막이 더 빛날 수 있게 우리의 온 정신을 쏟았던 날이었다.
그날 우리는 신사스토어에 밤 11시 반쯤 도착한 것 같다.
대표님은 2층을 맡고,
나랑 이사님은 3층을 맡는 걸로 분담했다.
지금 기억에도
진짜 욕 나올 정도로 힘든데, 한편으론 웃음이 서리다.
절대 애들 앞에선 보일 수 없던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다.
자정이 훌쩍 지났다.
이때쯤부터는 몸과 정신이 따로 움직인다.
2층에는 대표님 혼자 아주 심각하다.
특히 당시 비니를 씌워 놓은 모양새가 그때는 어찌나 웃기던지.
담배 피우러 가는 길에 이사님과 내가 구경하며 그를 한참이나 놀리며 깔깔댔다.
3층에서도 모자로 쇼(?)를 했다.
아무래도 가을 겨울 시즌이다 보니 방한과 연출의 역할을 잘할 만한 소품군이니 다채롭게 고객들을 맞이할 준비 중이었다.
“이거 한번 써봐요”
“우왓! 거울 봐봐. 진짜 웃겨요!”
이사님은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나에게 권한다.
우리끼리 그 멋스러운(?) 모자를 써보며,
너무 '격한 패션 감각에 이걸 과연 누가 살까 싶다'는 우리끼리의 솔직힌 말로 수다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이거 디피 한 거 한번 봐봐요. 어때요? 사고 싶어?”
“이거는 우리 물량 많이 하지 않았나? 사이즈별로 디피하고 바로바로 고객 피팅 가능하게 두는 게 낫지 않아요?”
“이건 가격을 어떻게 매겼길래 가격이 이래?”
나는 대답 없는(?) 질문을 했다.
이사님은 어쩔 땐 대답을 하거나, 어쩔 땐 대답이 없었다.
뭐 하나 싶어, 가보면
혼자만의 사부작거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냥 그는 졸린 것이었다. 동공이 풀린 채 말없이 뭔가를 만지작거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끼리 그렇게 정신이 나간 건지, 졸려서 몽롱한 건지 오락가락한 정신과 정말 못생긴 낯빛으로 그날을 정리했다.
여기서, 잠깐!
대표 이사 나 이렇게 직급 체계만 들었을 때,
'무슨 임원들이 저런 걸 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기에 여기는,
대표와 이사가 모두 30대 중반의 남자 사람들이고, 나까지 모두 198N년생의 사람들이기에 그런 감투가 의사결정과 업무지시에만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애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일의 경중 따윈 없다.
모든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믿는 사람들이니까.
— 이때 안 바쁘면 문제(?)
7월과 8월이 패션산업에서는 휴가와 함께 제일 바쁜 한 때이다.
지금 판매 중인 시즌의 판매 촉진
다가올 시즌의 오픈 준비
내년 시즌의 홀세일비즈니스 준비 완료
이렇게 3개의 시즌이 동시타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그때의 그 바쁨은 거의 막바지의 바쁨이었을 것이다.
한 시즌을 열기 위해선,
모든 조합의 퍼즐이 다 맞춰져야 고객 앞에 설 수 있다.
제품의 합을 보통 컬렉션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전개 방식으로 운영하지 않는 브랜드들도 물론 있다.
Product by Product 제품 자체를 정체성으로 삼는다.
제품별 컬러, 사이즈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보여주는 브랜드도 있다.
어떤 전개 방식이든 장단점은 있다.
일단 A_Drama는 컬렉션 구성을 가져갔다.
컬렉션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시즌 구성은 아래와 같다.
1. 시즌 콘셉트
시즌의 스토리가 있다 (일명 콘셉트이라고 말하는 일종의 이 컬렉션을 왜 만들었는가의 개연성에 해당된다)
2. 스타일링
머리부터 발끝까지 착장 할 수 있는 구성으로 그 스토리에 기반한다. 흔히 브랜드만의 스타일링/ 연출력이 그것이다.
3. 통합적 비주얼
위 1,2번을 통해 매력적인 비주얼 콘텐츠가 있다.
(비주얼 콘텐츠만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므로 생략)
4. 텍스트의 재구성(페이퍼 워크)
단순히 시즌 콘셉트를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홀세일비즈니스에 이용할 Sales& Marketing Report부터 제품별 Detail Book, Size chart, Linesheet, Description 등 다양한 페이퍼 워크가 이뤄진다.
위는 순.전.히 〈이해를 돕기 위한〉
나의 개인적인 4가지 요약이다.
위 4가지는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되기 이전에 홀세일비즈니스를 위한 구성의 항목일 뿐이다.
본 게임은 해당 시즌에 맞춰 그 깊이와 풍성한 멋과 말이 전해질 수 있도록 편집과 추가 구성으로 더 갖춰진다.
백조가 따로 없다.
사실 더 들어가서 보면,
몸 쓰는 일, 머리 쓰는 일이 복합적으로 이뤄져 고단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바라보는 패션은 대다수의 브랜드 관계자들의 이러한 노력으로 갖춰진 최선의 표현이다.
그래서 어떠한 시나리오로 엮어질 때는,
발 밑에서 ‘우르르 우당탕탕!’ 구르는 모양새는 편집되기 마련이다.
오늘 나의 이야기 역시 어느 정도 각색이 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도 재미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도 이러한데 하물며 패션 산업을 주제로 다루는 드라마는 어떻겠는가.
사실 패션 사람 친구들은 그러한 종류에 드라마를 거의 안 본다.
본다면,
그 드라마에 제품 협찬으로 인한 착용 여부 확인을 위해서겠지.
이로 말할 수 없는 특유의 오글거리는 면모들이 있다.
회사생활
조직생활
사회생활
돈을 벌기 위해 하는 행위와 과정들이 사실 들여다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비슷하다는 말이다.
다만 '어떤 일을 하느냐'의 차이다.
근무 환경, 주어진 과업,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은 모두에게 똑같이 놓인 ‘생활’이다.
Spend Money는 쉽고 즐겁다.
Make Money는 어딜 가나, 뭘 하든 똑같다.
남의 돈 받는 게 어디 그리 쉬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각자의 마음으로 한주를 시작한다.
우리는 각자 모두의 자리에서
더 나아질 수 있는 스스로의 이유를 찾는다.
인정과 보상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하고,
그 결실을 기다리며 크고 작은 '기적'을 바란다.
그것은 어떤 현장이든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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