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다이어리

버리지 못하는 기억 1. 팬데믹 보다 두려웠던 시선

by 은영

벌써 1년이 흘렀다. 내가 두 번째 이스라엘 여행을 다녀온 지 말이다. 첫 번째 이스라엘 여행 후 두 달도 채 안되어 다시 이스라엘로 향한 목적은 예루살렘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로 향한 그 첫 번째 여정은 이랬다. 외할머니의 유일한 해외 여행지였던 이스라엘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발단이었다. 몰타에서 비자가 만료되자마자 이스라엘의 벤 구리온 공항으로 향하는 밤 비행기에 주저 없이 몸을 실었다. 그렇지만 조금 전의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이내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돌아 비행기에서 잠을 설치고 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 밤만 하염없이 헤아렸다. 그때, 이른 새벽에도 빛나고 있는 지중해를 따라 들어선 이스라엘의 해안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왠지 모를 안도감과 함께 설렘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하면 막연하게 떠오르는 전쟁, 정치, 종교라는 경직된 단어와 달리 여행하며 느낀 것은 사뭇 거리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수도인 텔아비브의 밤은 화려하고 생기가 있었으며 바다에는 서퍼들이 겨울 파도를 맞서고 있었다. 그저 성스럽게만 느껴지던 예루살렘도 올드시티 밖은 종교나 문화와 상관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으로 분주했다. 마사다 사막과 사해 그리고 갈릴리 호수의 자연은 그곳을 찾는 이 누구에게나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새로움을 선사하는 이 나라가 내게 흥분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 이곳이 평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한없이 영감을 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유학을 결심했다.

이듬해 설을 막 지났을 무렵, 중동은 요란했다. 당시 이란의 선전포고도 무시한 채 나는 이스라엘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들고 한 달의 일정으로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즈음 국내 코로나 확진자는 약 스무 명 남짓한 수였다. 국내에서도 마스크를 선택적으로 사용하던 시기라 나 역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SNS를 통해 살펴본 국외에서의 상황도 감염병 확산의 두려움보다는 전 세계를 누비고 있던 한국인 여행자들이 동양인 차별을 경험한 이야기가 떠돌고 있을 뿐이었다.

별일이 있겠냐는 마음으로 다시 찾은 이스라엘은 여전히 활기 넘치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예상했던 대로 동양인에게 무례한 언행을 하는 이들이 간혹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일정을 소화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유학을 결심한 학교에도 방문해 입학 담당자를 만나 행정 절차에 대해 안내를 받았다. 교정을 거닐며 내 계획은 실현되고야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전공 교수와의 면담만을 남아 둔 상태.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내게 순한 맛, 매운 맛 모두 맛보게 한 이스라엘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다. 2월 중순이 넘어가며 한국은 대구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한 한국의 성지순례단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는 일이 발생했다. 그 일로 현지인들 사이에서 코리안 포비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며칠 후, 이스라엘은 한국에서 온 대한항공기를 사전 통보 없이 돌려보내는 일이 생겼다. 예루살렘 거리에서는 이스라엘에 체류하는 한국인을 모두 쫓아내라는 시위가 일었다. 한국인은 호텔에서도 쫓겨났다. 나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머물고 있던 에어비엔비의 주인이 내가 이스라엘에 온 지 14일이 훌쩍 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보건부에 신고하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과연 이 나라가 내가 알던 그 나라인가 라는 생각에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때였다. 예정되었던 대학교수와의 면담 하루 전, 그녀의 조교에게서부터 메일이 온 것이다. 대면 면담을 할 수가 없다는, 그렇기 때문에 추후에 스카이프로 면담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나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 메일에는 면담을 취소하는 이유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감정을 추스를 세 없이 당장 메일을 썼다.


친애하는 Naama에게


알겠습니다. 연락 가능한 스카이프 계정을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그렇지만, 왜 면담이 취소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주신 메일에는 일정 취소에 대한 사유가 쓰여있지 않았습니다. 혹시, 지금 이스라엘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한국인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의 방문 사실과 관련된 이유인가요? 그 사실에 대해 저 역시 인지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코로나와 관련한 그 어떠한 유사 증상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여기에 온 지 벌써 3주가 지났기 때문에 자가격리 대상자도 아닙니다. 만약 이런 이유로 오해가 생긴 것이라면 풀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게 면담이 취소된 이유를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제가 만약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취소된 것이어도 저는 이 상황을 모두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메일을 보내자마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대사관에 전화를 했다. 그때 대사관은 이스라엘 내에서 퍼지는 코리안 포비아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고 현지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들을 조기 귀국하는데 돕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으니 자신들이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한국으로 떠나는 것이 좋겠다며 권했다. 그리고 출국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공항으로 오라고 했다. 그들이 제안한 것 외에 내게 별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조기 출국 때문에 놀랐던 것이었을까, 왜인지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쫓기듯 그렇게 숙소에서 짐을 싸고 길을 나섰다.

최근 며칠 동안은 숙소 밖에 나가지 못했던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얼굴을 최대한 가리기 위해 외투의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렸다. 택시 기사들이 한국인 승차거부를 한다는 이야기에 별수 없이 트램에 올랐다.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 알 수 없는 시선에 숨이 막혀 왔다. 등 뒤로 꽂히는 따가운 눈길을 뒤로한 채 트램에 내려 예루살렘 중앙역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그곳에서 공항으로 가는 고속 기차를 타려는데 선로에 있던 직원이 한국인이냐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평소의 나라면 웃으며 그렇다 대답을 했을 것을 텐데 잔뜩 날이 선채로 나는 오히려 반문을 했다. 왜 물어보느냐며. 그녀는 멋쩍어하며 자신이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데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도 편안하게 웃어줄 수가 없었다.

공항에 도착해 대사관 직원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조기 출국이 가능한 티켓을 건네받았다. 비행기 오르기 전, 아까 조교에게 보냈던 메일의 답이 왔다.


그런 이유가 아니에요!

그저 다른 일정이 있던 것을 우리가 깜박하고 있었어요. 방금 그 사실을 알아차렸고 바로 당신에게 메일을 드린 것입니다.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 어떠한 이유도 변명이어야만 이 분한 마음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남은 미련을 털어내며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과 이스라엘을 잇는 하늘길은 모두 막혔던 터라 나는 터키를 경유하여 한국에 닿았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항시 바짝 긴장을 한 탓에 온몸이 아릴 정도로 피곤했다.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당시 확진자가 1명도 발생하지 않은 이스라엘과 달리 우리나라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유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무척 편했다. 긴장이 풀리니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시장에 들러 떡볶이를 샀다. 매서운 시선 때문에 배가 고파도 뭐 하나 사 먹으러 나갈 수가 없던 이스라엘에서의 최근이 떠올랐다.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해도 먹고 싶은 떡볶이란 떡볶이는 종류별로 다 널려 있는 이 나라가 나에게는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한때 너무나 사랑했던 이제는 내게 잊히지 않는 상처를 안겨준 나라, 이스라엘. 그 상처들을 떡볶이의 매운맛으로 잊어보려 안 간 애를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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