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물건 7. 현재로 이어지는 과거의 메시지
사람들은 내게 역마살이 꼈다고 한다. 그건 내가 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인데 사실 나는 여행도 여행이지만 이사를 정말 많이 다녔다. 33년간 길지 않은 인생에서 여덟 번의 이사를 했으니 역마살이 꼈다는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사를 자주 하다 보니 웬만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살림을 늘리지 않는다. 집에 물건이 하나 둘 쌓이게 되면 이사할 때 그만큼 수고스러운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사하는 날이 되면,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물건을 별안간 결단력을 발휘해 거침없이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버리기도 한다.
한편, 끝내 버리지 못하고 라면 박스에 켜켜이 모아두는 것이 있다. 그건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90년대 시절 아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팬시 잡지가 있었는데 이름하야 《Mr.K》다. 나 역시 그 잡지에 반은 미쳐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잡지 내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편지지에 홀라당 마음을 빼앗겼다. 잡지는 매월 다른 디자인의 편지지를 발행했다. 문구점에서 산 따끈따끈한 새 잡지를 들고 교실에 도착하면 제일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골라 친구에게로 향했다.
“난 이거. 이 하늘색 편지지가 제일 맘에 들어. 몽글몽글 여름 구름을 닮은 것 같아. 솔이 네가 여기에 편지를 써줘. 알겠지?”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자기가 받을 편지지를 미리 골랐다. 편지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는 물건이지만, 간직하는 쪽은 받는 사람이기에 그의 의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우리의 생각이었다. 친구의 아기자기한 손글씨가 더해지는 상상을 하며 편지지를 고르는 일은 늘 설렘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틈틈이 쉬는 시간마다, 가끔은 수업시간에도 선생님 몰래 편지를 썼다. 다른 친구가 볼 수 없게 평평했던 종이를 세네 번 접으면 일정한 두께가 만들어졌다. 편지봉투도 필요 없이 아껴두었던 스티커로 종이가 열리지 않게 붙이면 문장에 마침표를 찍듯 괜히 뿌듯해졌다. 편지를 교환하며 내용은 각자 집에서 확인하자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집에 도착하면 엄마도 노크를 해야 들어올 수 있는 내 방으로 들어가 편지지를 펼쳤다. 그리고 건조했던 종이에 삐뚤빼뚤한 글자가 만든 표정을 읽어 내려갔다. 이내 내 얼굴에도 같은 표정이 스며들었다. 용돈을 모으면 다시 그 잡지를 샀고 하교 길의 별미인 피카츄 돈가스 정도는 거뜬히 포기할 수 있었다.
몇 해가 지나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고 반에는 하나 둘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생겼다. 학기말 고사가 끝나면, 그 수는 대폭 늘어있었다. 보나 마나 성적표에 휴대폰을 걸고 피땀 눈물 흘려가며 노력한 대가였을 것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집전화가 아닌 자기 이름으로 통신 요금제를 가입한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교환했고 문자메시지로 서로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문자메시지는 40자까지만 쓸 수 있었지만 꽉 채워 쓰는 것은 왠지 멋이 없는 느낌을 주었다. 길면 길수록 찬사를 받았던 편지와 달리 'ㅎ2' 두 글자가 세련되게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편지를 쓰는 일은 일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책상 앞에 앉아 신중히 고른 편지지를 올려놓고 형형색색의 펜들을 번갈아 가며 글자를 적는 일보다 엄지를 현란하게 움직여 유행하는 이모티콘을 총동원해 문장을 완성하는 것에 점차 익숙해졌다. 휴대폰뿐만이 아니었다. 컴퓨터 모니터 속에 한 뼘만 한 메신저 창을 띄어놓고 방금 전까지 학교에서 같이 놀던 친구와 실시간으로 대화를 했다. 메시지 전송 속도만큼 일상에 통신 기술이 스며드는 속도도 빨라졌고 지금은 스마트폰을 통해 개인이 언제나 어디서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제한 글자 수 40자 마저 의미가 없어진, SNS를 통해 문자뿐만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으로 일상을 공유하는 현시대가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편지는 특정한 날에나 볼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의 생일 혹은 친구나 동료에게 생긴 기념할만한 날이 아니면 요즘은 이유 없이 편지를 건네는 것은 영 어색하다. 비록 자질구레한 내 이야기를 적어 보내도 답장이 오던 편지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생일을 빌미로 펜을 들고 종이 앞에 앉으면 그때 그 시절로 감성으로 회기 하곤 한다. 한 통의 편지를 건네기 위해 단어와 단어 사이에 숨을 고르고 고민하던 흔적이 담겨 있던 문장을 더듬어본다. 맞춤법을 틀리면 화이트 수정펜으로 찍 긋는 것이 아니라 하트라도 그려가며 꾸밈의 정성까지 보였던 마음을 되찾아 보기도 한다. 그 어느 것 하나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서로의 온기를 나눠가졌던 그때를 기억한다.
이사하는 날에나 그 존재감을 확인하곤 하는 이 편지들을 왜 난 여태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 시시콜콜한 일상을 편지로 나누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해 시간을 내어 정성을 쏟으며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은 사라져 가고 있다. 느리고, 번거롭고 게다가 수고스럽기까지 한 편지를 쓰는 일은 감히 헤어릴 수 없는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유대가 존재한다. 편지가 받는 이에게 닿는 순간 편지 속 이야기는 더 이상 보내는 이,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그 풍요로운 이야기 속에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존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편지를 열며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기대하던 우리의 마음은 유명 작가의 신간을 펼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편지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며, 과거에 대한 향수이다. 과거의 이야기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 수많은 문장이 담긴 이 편지를 나는 버리지 못한다.
내년 여름, 나는 제주도로 아홉 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다. 이번에도 이 편지들을 버리지 않고 가져갈 것이다. 첫 번째 이삿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