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기억 2. 싫어하는 것도 존중받고 싶어
어렸을 적 기억은 유난히 오래 남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송파동 집 처마에 살던 제비들이 지저귀던 소리, 일기장에 답장 쓰듯 소감을 적어준 선생님의 빨간 손글씨, 엄마의 화장대에 놓인 매니큐어를 열었을 때 나는 냄새 같은 것들 말이다. 또 어떤 기억은 깊게 뇌리에 박혀 지금까지도 내 생활에 스며들어 있다.
"아를 왜 이리 연약하게 키웠노?"
과메기 앞에서 고개를 내젓는 날 보며 이모는 괜히 엄마를 나무랐다. 나는 편식쟁이 중 편식쟁이다. 그중 가장 멀리하는 것은 바로 생선이다. 가시가 있는 모든 생선으로 된 음식을 찾지도, 차려져 있어도 젓가락이 갖다 대는 법이 없다. 주변 사람들의 핀잔에도 엄마는 내게 생선을 먹으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오히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 꼴을 못 보셨다.
어렸을 적, 일을 나가는 엄마를 대신해 가까이에서 살던 조부모가 나를 돌봐주셨다. 할머니의 밥상엔 늘 생선구이가 빠짐없이 올라왔다. 그날도 어김없이 갈치구이가 밥상 가운데 놓였다. 내가 밥을 뜨기가 무섭게 할머니는 늘 가시를 발라 밥숟가락에 생선살을 올려주셨다. 사실 나는 그게 몹시 싫었다. 어서 밥을 먹으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한 숟갈 먹고 나면 이번엔 할아버지의 차례. 내 숟가락에 생선살이 올려졌다. 불편했던 그날의 밥상에서 일이 나고야 말았다. 갈치 가시가 목에 걸려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다 게워내야 했다. 그렇지 않고는 도통 진정이 되질 않았다. 눈물 콧물 쏙 빼며 구토로 한강에 버금갈만한 물줄기를 만든 기억까지 남아버린 일이었다. 그 이후로 갈치든 뭐든 가시가 있는 건 기피 대상 1호가 되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도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밥상에 생선을 올리셨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밥숟가락에 생선살을 올리시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은 일이 어른들에게는 애를 키우다 생기는 에피소드에 불과했던 거다. 내가 생선을 먹지 않는 이유는 목에 걸렸던 가시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계속 내 밥숟가락에 올려지던 생선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 회도 안 먹어?"
생선을 먹지 않는다고 말하면 대번 오는 질문이다. 생선회는 아주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열에 아홉은 되는 것 같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식사 후보로 거론되는 초밥이나 생선이 주 재료가 되는 음식을 이야기할 때면 나는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걸 먹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조심스레 내가 생선을 먹지 않는다고 말하면 정말 가보고 싶었던 횟집이라며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모임이 회식자리인 경우에는 회사 돈으로 비싼 회를 먹을 기회를 놓쳤다는 말도 나온다. 밥을 먹기도 전에 눈칫밥부터 먹는 셈이다. 차마 생선을 먹지 못한다는 말을 꺼낼 수 없는 상황에는 체념하고 횟집에 따라 들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당근과 오이가 담긴 접시를 사수했다. 나를 신경 쓰지 말라고 주변인들에게 당부하지만 그들도 당근을 계속 리필해서 먹는 나를 불편해했다.
"혹시 못 먹는 음식 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는 노릇이다. 먹지 않는 음식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이가 정녕 나뿐이란 말인가? 그래서 식사 메뉴를 정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중요한 건 이 질문에 앞서 나도 고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생선을 먹지 않는다고. 그 말에 이어받아 사람들은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오이, 김치, 치즈, 닭발, 조개… 생각보다 음식을 가리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중에는 채식을 하는 비건 지향인도 있었다. 자연스레 이런 것들을 소거하고 나니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을 고를 수 있었다. 실은 내게 필요했던 질문이다. 못 먹는 음식이 있냐고 먼저 물어봐주었으면 했으니까.
골고루 먹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먹고 싶지 않은 음식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릴 적 원하지 않은 생선살이 놓인 밥숟가락을 입에 가져다 넣어야 했던 기분은 늘 조부모와의 식사를 꺼리게 했다. 좋아하는 것을 존중해주자고 말하는 세상에서 싫어하는 것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님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물어봐주면 좋겠다. 혹시 먹지 않는 것이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