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커튼이 있는 집

버리지 못하는 기억 4. 행복했던 시절

by 은영

지난해 봄, 이사를 했다. 이번엔 예전처럼 매번 통장 잔고와 신용등급에 맞추어 집을 골라야 했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오랜 자취 기간 동안 나름 집에 대한 취향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집을 고를 수 있었다. 집을 내 마음껏 꾸미겠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던 그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이사 갈 집의 거실과 부엌을 잇는 복도에 노란 커튼을 다는 것이었다.


2019년, 나는 갭이어를 보냈다. 그해 여름은 유럽의 작은 섬나라 몰타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지냈다. 몰타는 내가 원하던 나른한 일상을 보내기에 완벽한 곳이었다. 어느 골목이든 그 끝엔 항상 드넓은 지중해가 펼쳐져 있었고 시원한 바람에 파도는 일렁이었다. 거리에 피어있는 형형색색 꽃들의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학원에서는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그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바다 수영을 하며 섬 곳곳을 누볐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렀고 몰타에서의 시간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몰타의 또 다른 섬 고조로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몰타의 본 섬에서 고조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물살을 가르는 배의 갑판에 올라서서 고조를 바라보았다.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 있는 이 작은 섬에 사람이 산다는 것이 꽤나 감동적이었다.

고조에서의 2박 3일은 정말 달콤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더 일찍 세워졌다고 알려진 거석 신전인 주간티아로 달려가 그 세월을 가늠해보았다. 송골매의 산란지인 첸츠의 절벽에서 본 금빛 일몰은 황홀경 그 자체였다. 그리고 몰타의 지역 맥주인 치스크를 한 모금 넘기며 고조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지새웠다. 무엇보다도 한 밤 중 빅토리아 성벽 위에 서서 보름달이 밝힌 작고도 위대한 고조의 모습을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에 지긋이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렇게 가슴 한편에 고조를 선명히 담았다.

고조에서 본 섬으로 돌아온 나는 그날부터 눈앞에 고조가 아른거려 혼이 났다. 결국 나는 어학연수를 마치고 떠나기로 했던 그리스 행 티켓을 과감히 취소했다. 그리고 유럽 비자가 만기가 되기 전까지 고조에서 지낼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에어비엔비로 검색을 하던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집이 있었다. 그 집은 바로 노란 커튼이 있는 펜트하우스였다.


얼마 후, 그 펜트하우스로 이사를 했다. 고조를 품은 그 집은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거실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시원하게 창이 나 있었는데 한쪽에는 푸른 바다를, 다른 한쪽에는 초록의 대지를 사이좋게 나누어 담았다. 펜트하우스답게 넓은 테라스가 있어 밤에는 별자리를 헤아려 보기에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막 깨어난 나는 한껏 햇살을 머금은 거실의 노란 커튼에 시선이 멈추었다. 흐릿한 정신으로 나는 침대 위에 놓아두었던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화면에 노란색을 채우기 시작했다. 주인의 세심한 안목으로 고른 원목 가구와 노란 커튼이 만들어 낸 이 포근한 펜트하우스를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었다. 그날 나는 고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렸다.

(PH)Postcard_Travel_Malta-yellowcurtain1.jpg 고조의 노란 커튼이 있는 펜트하우스를 그린 디지털 드로잉을 엽서로 인쇄하였다. (스노우지 250g, 125x125mm)


요즘처럼 코로나로 답답한 일상을 보내고 있으면 고조에서의 추억에 잠기곤 한다. 그때의 기억이 사무치게 그리운 이유는 아마 그 집에 있을 것이다. 내게 먼 이국 땅에서도 집으로 여길 수 있는 따듯한 나만의 공간이 있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코로나 시대가 끝나고 다시 하늘길이 열린다면 어김없이 다시 고조로 향할 것이다. 고조로 가는 배의 갑판 위에 다시 설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본다. 그 섬이 보이는 순간부터 내 집을 먼저 찾아볼 것이다. 노란 커튼이 있는 나의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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