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기억 5. 내 삶에 스며든 초록빛 추억
대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쓰고 있는 블로그에 간단한 인터뷰를 요청하는 댓글이 달렸다. 댓글이 달린 글은 키우고 있는 틸란드시아에 대한 것이었다. '반려식물'에 대한 기사를 기획 중인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냐고 했다. 한창 반려의 대상이 동물에서 식물로 관심사가 넓어지던 때였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초록이들에 둘러 싸여 살고 있었는데 그것이 반려식물과 함께하는 생활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발견하게 되었다. 반려의 의미로 집 곳곳에 있는 식물과 함께 한 지난 세월을 더듬어 보기 시작했다.
초록이를 기르는 일의 처음을 되짚어보기 위해선 아마 봉선화를 키우며 관찰일기를 쓰던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반려'라는 의미로 식물과 함께 지내기 시작한 것은 스무 살 때부터였다. 그 시절 만났던 나의 애인은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하던 친구였다. 애인은 그의 엄마에게서 받은 영향이라고 했다. 여느 아주머니들처럼 애인의 엄마도 베란다 가득 식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했다. 운동장에서 축구공만 차는 줄 알았던 애인이 화분을 가꾼다니?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애인의 자취방에 처음 놀러 가던 날 작은 토분에 담긴 다육이를 데려갔다. 그 다육이의 이름은 천대전금이었고 내 인생 첫 다육이이자 반려식물이 되었다.
우리는 그 이후로 어느 기념일이든 상관없이 서로에게 꽃보다는 화분을 선물했다. 꼭 기념일이 아니어도 그랬던 거 같다. 나는 다육이나 선인장과 같이 초보자들도 키우기 쉽다는 것들을 고르자고 했다. 그렇게 1년을 주고받은 식물들은 애인이 군대를 가며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그 후로도 5년 간 애지중지하며 기르게 되었다.
그러다 마당이라 부르기 민망한 좁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한 그 해 겨울, 눈이 오는 날 깜박하고 집 안으로 들이지 않은 식물들을 한순간에 잃고야 말았다. 애인은 이미 떠난 지 오래였지만 내 곁을 지키던 초록이들을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떠나보낸 일은 허망한 마음만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한동안 식물 키우는 일을 애써 멀리 했다.
나에게도 식물을 키우는 즐거움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스물일곱의 생일을 맞았다. 회사 동기 언니가 내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실린더 형태의 유리병에 좁쌀보다 작은 입자의 회색빛 모래가 두텁게 깔려있고 그 위에 숯 조각이 몇 개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파인애플 웃통을 잘라놓은 것 같이 생긴 난생처음 본 식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네 생일 선물."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보다 희한한 모습의 식물에 궁금한 것이 더 많았다. 나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언니, 근데 이거 살아 있는 거 맞아? 왜 흙에 심어져 있지 않은 거야? 어떻게 키우는 거래?"
"틸란드시아라고, 공중식물이라나. 흙에 심을 필요 없이 공기 중에 있는 먼지를 먹고 자란대. 물은 가끔 분무해주면 되고. 흙 없이 깔끔하게 키울 수 있다고 해서 요즘 인기가 많다고 하더라고. 아무튼 생일 축하해."
정확한 이름은 틸란드시아 이오난사였다. 언니 말대로 그 녀석은 흙이 없이도 잘 자라는 식물이었다. 물을 주기 위해 분무기도 샀다. 1주일에 한번 흠뻑 물을 주고 잎 사이에 물이 고일까 봐 틸란드시아를 뒤집어 물이 다 빠지기를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히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얼른 물이 다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돌려두면 묘하게 안심이 됐다. 삭막한 회사 책상에 생기가 돋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또 그런 삭막함 때문에 괴롭지 않을까 싶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유리창 앞에서 해를 보는 시간도 챙겨주었다. 공기 중에 먼지가 얼마나 많은 걸까? 녀석은 갈수록 제법 덩치가 커지고 있었다.
"언니, 나 사실 식물 키우는 거 정말 좋아했다?"
선물을 준 사람에게 일종의 의무감으로 내가 얼마나 신경을 써서 틸란드시아를 키우고 있는지 어필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사실은 식물을 정말 좋아하고 잘 키우던 사람이라고. 보살피는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즐겁고, 어제와 다른 오늘의 작은 변화를 감상하고 있으면 설레고, 또 알 수 없이 든든함 마음을 들게 하는 저 작은 생명이 놀랍도록 좋다고.
대신 이 말은 삭혔다. 과거의 되돌릴 수 없었던 내 실수 때문에 애써 그 마음을 숨기고 살았는데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할 수 있게 됐다고. 다름 아닌 언니가 준 틸란드시아 덕분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이다.
틸란드시아가 내게 온 지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틸란드시아와 함께 고무나무, 용신목, 스투키, 블루베리나무, 몬스테라, 포인세티아, 페퍼민트, 바질… 또 텃밭에 있는 여러 생명들과 함께 지낸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거듭되면서 그 사이에 새로 들인 녀석들 중 나의 부주의함으로 떠나보낸 녀석도 있다. 아직도 부족한 것 투성인 녀석들의 반려자인 나라는 인간은 이 녀석들이 좋은 만큼 또 이 녀석들을 지키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중이다. 때를 맞추어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또 분갈이를 한다. 이 녀석들이 살아가는 속도처럼 느리게 호흡하며 오랫동안 시선을 두며 관찰한다. 관찰하는 시간만큼 녀석들을 향한 애정도 점점 커진다.
감히 '반려'라는 단어를 '식물'이라는 단어 앞에 붙여가며 그 의미를 되새겨본다. 반려라는 의미에는 어쩐지 현재 시제가 붙지 않으면 영 어색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 녀석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오늘은 날이 좋으니 창을 열어 봄바람을 쐴 수 있도록 해주어야겠다. 싱그러운 봄노래도 함께 들려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