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기억 7. 함께 필름의 첫 칸을 채우며
"언니는 멀어졌던 사람과 다시 가까워진 적이 있어요?"
오해가 생겨서 멀어진 친구로부터 최근 연락을 받았다던 Y가 물었다. “아마 없을걸…?" 그 대답을 1분도 안돼서 바로 물러야 했다. 박선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시절 배정받은 부서에서 박선배를 처음 만났다. 조직의 애로사항은 다 해결하고 다니던 선배는 모두가 찾는 사람이었다. 손이 많이 가고 남들이 꺼려하는 것은 다 나서서 처리하는 박선배는 선배들의 이쁨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지만 후배들은 그 선배가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어려웠다. 서툰 것 투성인 우리를 답답해했고 싫은 소리도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선배 앞에서 늘 마음을 졸였고 또 그게 싫었다. 그때마다 선배는 틀림없이 날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그 확신은 내가 그녀를 미워하는 데 합당한 이유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 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걸 다 혼자서 했단 말이야?”
박선배는 다른 부서로 전배를 가게 되었고 나를 비롯한 후배들은 선배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업무 속에서 늘 인상이 구겨지던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리에서 잠시도 엉덩이를 떼질 않던 선배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여럿이 나눠서 하는 일들이 되었지만, 인력이 충분치 않았던 시절에 선배의 역할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를 지경이었던 거다. 그 와중에 허투루 한 것 하나 없이 인수인계마저 완벽했다. 그냥 성격이겠거니 했던 것은 보통 책임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선배와 나눠본 사적인 대화가 기억나질 않았다. 선배에게는 여유란 없었다.
박선배는 그 후로도 종종 부서에 얼굴을 비쳤다. 그녀를 향한 미운 마음을 들킬세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인사하는 내게 선배는 의외로 따듯하게 말을 걸어왔다.
“많이 힘들죠?”
그 마음을 잘 안다며 눈을 마주 보려는 박선배의 진심을 그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때는 내가 회사 생활의 첫 고비를 맞았던 3년 차였다. 선배의 빈자리는 컸고 그 사이 나는 마음에 감기가 들어있었다. 먼저 말하지 않아도 위로를 건네는 다정한 목소리에 목이 메었다. 선배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자신의 과거를 보는 것 같다며 함께 눈물을 흘려주었다. 그래서 자신도 그때 부서를 옮기게 된 거라고 했다. 선배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그런 선택을 내렸다고. 내게도 곧 그런 기회가 올 거라고 다독여주었다. 선배의 말처럼 머지않아 다른 부서에서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내가 넘어지려고 할 땐 선배가 나를 붙잡아 주었다.
그랬던 박선배와 마지막 점심식사를 했다. 오래도록 준비했던 꿈을 위해 선배는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나는 떠나는 사람에게 마음을 많이 쓰지 않는 편이다. 누군가 떠나는 일은 당연하고 빈번한 일이기도 하니까. 더군다나 꿈을 위한 떠남이니 웃으며 축하해주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도 아쉬운 마음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그와 동시에 미뤄왔던 일을 해야 했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간 미워했던 마음을 감추며 선배의 손을 잡아왔기 때문이다. 좋은 사이로 회복하고도 그 사실을 숨긴 것이 언제나 석연치 않아 손톱 옆 티끌 같은 거슬림으로 내게 늘 남아 있었다. 항상 선배에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선배는 그간 내게 두 번의 편지를 남겼다. 한 번은 그녀가 부서를 떠나던 날, 다른 하나는 내가 갭이어를 보내기로 하며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었을 때다. 누군가 한쪽이 떠날 때 선배는 내게 편지를 썼다. 그 사려 깊은 마음에 감동하는 쪽은 항상 나였다. 이번엔 내가 편지를 써야 할 차례였다.
선배가 미국을 가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요. 그거 아세요? 선배는 내게 버팀목 같은 사람이었어요. 내가 의지하던 선배가 떠난다는 사실이 슬프고 버겁지만, 그만큼 단단해지기 위한 시작이라고 생각할게요. 선배가 그랬잖아요, 행복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그런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제게 귀감이 되었어요. 멈춰있지 않고 노력하는 선배를 알게 되어 기뻤고요. 선배는 내게 그런 사람이에요.
사실 이제껏 하지 못한 말이 있어요. 저, 선배를 미워했어요. 선배는 늘 진심이었는데 저는 그렇지 못했어요. 내가 선배를 미워한 걸 숨겼으니까. 그래서 헤어지기 전에 꼭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선배를 미워했다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선배가 무섭고 어려웠어요. 또, 저를 미워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저도 선배를 미워해도 된다고 이유를 만들어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아니란 걸 그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때 선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까지도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으로 떠나 만날 수 없지만 그때도 행복을 찾아 떠났던 것처럼 지금의 떠남도 응원할게요. 부디 몸 건강히 선배의 꿈에 가까운 날들이 그려지길 바랄게요.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편지는 나중에 읽어주세요.”
나는 선물과 함께 편지를 건넸다. 그건 고백에 가까웠다. 당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과거엔 얼마나 어리석은 마음을 품었는지에 대한 고백. 수많은 인연 속에서 박선배를 만난 것이 내게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고 말이다. 사소한 것에도 감동을 받는 선배의 눈가에는 벌써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난 그걸 봤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당신을 미워했노라고 고백하는 편지를 주면서 내가 울 순 없으니까.
박선배를 위한 선물은 일회용 필름 카메라였다. 미국으로 가기 전 가족 여행을 간다는 선배의 말을 기억하고 준비한 것이었다. 여행의 추억을 스마트폰 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로 남기고 손에 잡히는 사진으로 간직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선배는 내가 건넨 카메라의 필름 첫 칸을 우리 사진으로 담자고 했다.
“근데 제대로 나올지 모르겠다.”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셀카를 찍듯 필름 카메라를 한 손으로 쥐고 셔터를 누르는데 그 사진이 어떻게 나오든 오늘의 기억만큼은 선명하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