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나비를 만들며

버리지 못하는 기억 6. 기억은 힘이 세지

by 은영

올해도 어김없이 노란색을 골랐다. 그날을 기억하기 위한 색은 어느 순간부터 모두에게 노란색으로 정해져 있다. 이번에는 나비를 만들기로 했다.

"나비가 어떻게 생겼더라?"

평생 그림을 그리면서 그리는 대상의 형태를 새롭게 발견하는 경우가 참 많다. 어릴 적부터 숱하게 나비를 그려왔음에도 그 모습을 재차 확인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눈으로 본 그 찰나의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지 그림쟁이는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자꾸만 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통형의 기다란 몸 그리고 그 끝에 돋아난 길쭉한 더듬이는 생략하기로 했다. 날개 두 쌍이 만들어내는 생동감은 나비를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나비의 화려함을 표현하도록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노란색 외에 다른 것은 불필요했다. 그날을 기억하며 자유롭게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노란 나비를 만들어 본다.

21_16 yellow butterfly-1.png 노란 나비를 만들며


어렵사리 취업 문을 넘은 그 해 봄, 나는 회사에서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를 준비하는 T/F로 차출되었다. 파견 근무지는 보정역과 죽전역 사이에 있었다. 나는 주로 보정역에서 내려 걸어서 사무실로 향했고, 그곳을 가는 데는 두 가지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도로를 따라 난 인도를 이용하는 길, 다른 하나는 지도에 없는 내가 발견한 지름길이다. 나는 주로 그 지도에 없는 길을 다녔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느 한 고등학교 옆에 난 길이었다. 그 길은 정리되지 않은 수풀이 우거져 있었는데 걷고 있으면 출근길이 아니라 아침 산책을 하는 기분이었다. 어느덧 파견 근무를 한 지 한 달이 되었고 그 길엔 4월의 하얀 조팝나무 꽃이 활짝 피었다.

2014년 4월 16일,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조금 흐린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동기들과 카페에서 차 한잔씩 사서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던 중, 스마트 폰에 뉴스 속보 알림이 떴다. 인천에서 출발한 제주로 향하는 배가 침몰했다는 그리고 연이어 승객을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널을 뛰었다. 어쨌든 전원 생존이라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다급한 마음을 정리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다음 날, 하늘은 울었고 조팝나무 꽃은 비에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꽃들이 진 자리에는 아연함만이 남아 있었다. 이런 일을 두고 회사에서 웃고 떠드는 행사를 기획한다는 것이 어쩐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감정에 뒤엉킨 채로 추모 공간을 찾아다니고, 주말에는 봉사활동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짙게 깔린 무거운 슬픔은 덜어낼 수 없었다.


'#기억은힘이세지' 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노란 나비 그림을 게시했다. 7년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그 무력감을 떠올리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이어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 해부터인가 매년 4월 16일이 되면 나는 노란색으로 그림을 그린다. 노란 리본, 노란 고래 그리고 이번 세월호 7주기에는 추모의 마음을 담아 노란 나비를 만들었다.

그깟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무슨 대수냐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드리웠던 슬픔의 기억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누군가에게 읽히고 보이고 들리게 하는 것은 그날을 기억하기 위함에 있다. 더불어 아픔을 딛고 변화를 일구고자 하는 힘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기억을 지속하는 일이야 말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다음을 위한 약속이니까. 기억의 힘은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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