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물건 6. 내가 만난 대서양
"대서양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함께 걸은 지 36일째 되던 날, 잭에게 말했다. 독일인 잭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유럽이 삶의 터전인 그에게 대서양은 내게 동해와 같은 것이리라.
나와 잭은 스페인을 바라보고 있는 프랑스의 작은 국경 마을, 생장피드포르에서 처음 만났다. 한국에서부터 온 나와 쾰른에서부터 온 잭은 같은 목적지를 두고 있었다. 다름 아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성지이다. 사실 바욘에서 생장피드포르로 가는 기차 안에서 그를 발견했다. 그가 메고 있는 배낭부터 신고 있는 등산화까지 내 것과 무척 비슷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순례자 사무소에서 재회했다.
다음 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길을 나섰다. 나는 앞에 보이는 잭과 스페인 순례자들을 바라보며 걸었다. 같은 방향으로 걷는 순례길에서는 앞 뒤에 늘 순례자가 있기 마련이다. 서로를 의지하며 걸음을 내딛는 건 순례의 덕목과 같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눈에 담으며 론세스바예스로 향해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으로 순례의 시작을 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시야에서 그들이 사라졌다. 나의 속도가 현저히 뒤처지고 말았던 것이다. 한국에서 열심히 걷기 연습을 좀 할걸. 어깨에 멘 12kg의 배낭을 얕잡아보았다며 후회를 해봐도 이미 늦었다. 되돌아갈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론세스바예스에 도착만이라도 하자며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이를 악 물고 앞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
한참을 걷는데 앞에서 익숙한 등산화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잭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 손을 꼭 잡고서 높게 치솟은 오르막을 단숨에 오르는 잭. 오르막 끝에는 아까 보았던 스페인 순례자들도 있었다. 내가 걱정되었다며 다들 입을 모았다. 그들은 목을 축이라며 텀블러 컵에 따뜻한 차 한잔을 따라 건네며 내게 이름을 물었다. 나는 미쉘이라고 대답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순례를 마친다. 나의 동료들도 그랬다. 그러나 나와 잭은 멈추지 않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시작하는 120km의 여정을 계획했다. 과거 유럽인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피스테라까지 우리는 순례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출발하여 네그레이라, 올베이로아, 무시아를 지나 피스테라에서 마치는 길. 4일의 시간이 더 필요한 길이다.
사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커녕 지금 우리가 함께 향하고 있는 피스테라까지 함께 걷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행을 다니면서 늘 새로운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나의 타고난 성향 덕분이라고 쳐도 나이도, 국적도, 성별도… 그 어느 것 하나 공통분모가 없는 이와 한 달이 넘도록 함께 순례를 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무시아는 피스테라로 향하는 길에서 처음으로 대서양을 볼 수 있는 마을이다. 올베이로아에서 무시아로 향하는 길, 28km만 걸으면 대서양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좀처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며 옆에서 잭은 궁시렁거렸지만 내게는 분명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대서양을 처음 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걸어서 대서양을 보는 일은 귀하게 느껴졌다.
"저기 봐, 미쉘."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고요한 수평선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대서양이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바다는 내 안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갈라시아 지방의 소박한 어촌 풍경을 선사하는 바다 냄새 짙은 곳, 무시아에 닿은 것이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몸의 모든 감각이 바다에 잠긴 듯했다. 잠시 눈을 감고 대서양을 안겨준 무시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올라!(안녕의 스페인어)"
잭에게 배운 길 위의 피조물과 인사하는 법이다.
나는 잭에게 자연을 향유하는 법을 배웠다. 난생처음 향유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게 된 것도 아마 잭 덕분일 것이다. 걸을 때 음악을 듣기보다 새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길 위의 작은 것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식사할 때는 생명의 숭고함에 감사를 하는 잭. 나는 잭과 함께 길을 걸으며 그런 것들을 배웠다.
한 번은 길 위에서 새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나뭇가지에 자리 잡고 노래를 부르던 새들을 향해 잭은 휘파람을 길게 한 번 불었다. 이어 박수를 두 번 쳤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도 아니고 정확히 두 번을. 그러자 새들이 줄을 지어 포물선을 그리고 다시 나뭇가지에 앉는 것이었다. 이번엔 자기가 휘파람을 불 테니 내게 박수를 쳐보라고 했다. 그 말에 끄덕이며 그의 휘파람 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내 박수 소리에 화답하듯 새들은 다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찰-칵!"
그 찰나의 순간을 잭은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새들을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의 스페인어)"
나도 잭을 따라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무시아에서 피스테라로 마지막 순례길에 오른 날, 우리는 대서양을 오른쪽에 끼고 걷기 시작했다. 걸어서 대서양까지 왔다는 사실이 아직도 감격스러워 시선은 바다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넋이 나간 듯 걷다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잭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내 옆에 있었는데 어디로 간 거지? 워낙 걸음이 빠른 사람이라 이미 한참을 앞서 간 것일까?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는데 어디선가 날 부르는 외침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잭이 있었다.
"어디에 있었던 거야?"
투덜거리는 내게 잭은 대답 대신 내 손에 조개껍데기 세 개를 쥐어 주었다. 이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말했다.
"이게 바로 대서양이야."
나는 그날 에메랄드 빛 눈을 가진 그에게 대서양을 건네받았다.
"그라시아스."
손에 들어온 대서양을 꼭 쥐며 말했다.
무시아를 지나, 피스테라 그리고 다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나는 포르투갈 비고로 넘어가는 기차를 타야 했다. 처음으로 잭과 이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 식사를 마친 그의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데 내가 떠나는 기차역까지 배웅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우산이 필요 없는 순례자인 우리는 역 앞에서 빗 속의 포옹을 했다.
"넌 영원히 내 딸이야, 미쉘. 늘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마."
벌써 잭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우리 엄마보다 조금 어린 나이의 다 큰 어른인 잭은 늘 그랬다. 헤어지는 사람들 앞에서 애써 담담한 척하지 않는 그런 사람. 그는 정말 많이 울었다. 나도 그랬다. 우리가 닮은 유일한 점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것. 누가 누구를 달래주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서로 울면서도 비가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빗소리에 우는 소리를 감출 수 있었으니까.
잭을 뒤로한 채 기차에 올랐다. 걷기에 익숙해진 나는 탈것에 몸을 실으며 순례자의 흔적이 점점 지워지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 기분이 못내 아쉬워 나는 어서 배낭에서 잭이 쥐어 준 조개껍데기를 꺼냈다. 코 끝으로 가져가 냄새를 맡아보았다. 깊은 바다 내음이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