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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m Jan 21. 2023

나비가 되고 싶다

폴인러브

이지 보텍스를 연습하다 어깨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고 어깨가 빠질 것처럼 아파서 정형외과에 갔던 그날 이후, 한동안은 어깨가 아파서 팔을 높게 들기만 해도 힘들었고 그래서 치료에만 전념했었다. 아픈 몸으로 폴을 타느니 얼른 나아서 쌩쌩하게 폴을 타는 게 나을 것 같아 얼마간은 폴을 쉬었다. 당장 연습실에 가서 조금이라도 연습할까... 오늘만 그냥 학원에 갈까... 이런 충동적인 마음을 억누르고 열심히 스트레칭도 하고, 유튜브를 보며 어깨회복에 좋다는 근력운동을 따라 하고 폴댄스 튜토리얼 영상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친한 언니가 체험수업을 한다 하여 참관해서 잠깐 조심스럽게 함께 폴을 탔던 입문수업 한 번을 제외하고는 약 2주 가까이 폴을 쉬었다.


그러다 몇 회 남은 학원의 수강권 기한이 만료되었고, 슬슬 새로운 학원을 알아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 내가 다니던 연습실 사장님이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그 제안이란, 폴댄스 초급 과정에서 배우는 기술들을 개인레슨 받아보겠냐는 거였다! 선생님은 3월부터 강의를 열고 학생들을 가르치실 계획인데, 그전에 커리큘럼을 정리하면서 입문자가 얼마만큼 진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 일종의 테스트 겸 나에게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주고 싶다 하셨고, 대신 수강료는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동안 학원에 다니면서 잘 안되던 부분을 선생님께 여쭤보고 혼자 연습하면서 약점을 극복했고, 덕분에 학원 수업도 처음보다 적응이 수월해지는 등 선생님께 많은 도움을 받아온 나로서는 너무나도 감사한 제안이었다. 게다가 평소 선생님과 자주 대화를 해서, 선생님은 내 몸의 장점과 단점, 잘 안 되는 동작과 수월한 동작 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사실 예전부터 개인레슨을 받는다면 꼭 선생님께 받고 싶었던 터였다.


그렇게 이번 주 화요일에 시작해 화요일과 목요일에 개인 레슨을 받았고 수요일과 금요일인 오늘은 홍자서 연습을 하며 한 주를 보냈다. 매일 폴을 타다 갑자기 확 쉬고 오랜만에 해서그런지, 쉽게 하던 동작도 잘 되지 않아 당황했지만 금세 감을 찾았다. 선생님께는 쉽지만 정확하게 하려면 어려운 동작들 몇 가지를 배우고, 혼자 연습실에 가서는 예쁜 기술들 보다는 힘을 키우기 위한 기본 동작들 위주로 연습을 했다.


연습실에 가서 혼자 연습할 때는 선생님이랑 같이 할 때 잘 되던 것도 혼자 하려면 쉽지 않고 알려주신 요령 같은 것들도 자꾸 까먹곤 한다. 그래서 선생님의 시연 영상을 보거나 유튜브 전문가 영상을 찾아보고는 한다. 말도 안 되는 어려운 동작을 무리하게 시도하는 것만 아니라면 연습을 꾸준히 자주 하는 편이 실력을 향상하는 데에 분명히 도움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니 나는 설연휴가 시작되는 내일도 연습실에 갈 계획이다. 아 그리고 어깨는, 쉬엄쉬엄 조심하며 폴을 타고 아침 저녁으로 폼롤러와 스트레칭을 해주면서 많이 좋아졌다. 게다가 선생님께서 내 상태를 알기에 당분간은 어깨에 크게 무리가 없는 동작들을 배우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마음이 무척 괴로울 때 폴을 처음 시작했고 그 후 지금까지도 나는 줄곧 폴을 탈 때가 가장 행복하다. 예를들면 잘 안되던 동작을 성공했을 때, 그동안 배운 기술들을 연습실에서 홀로 이것저것 해보다가 문득 내 실력이 조금은 늘어난 것 같다고 느낄 때, 선생님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받을 때 그랬다. 더욱이 홀로 찾았던 연습실 사장님께 개인레슨도 받고, 연습실에서 레슨을 준비 중인 또 다른 선생님도 알게 되어 같이 밥을 먹는 등 폴을 시작하고 알게 된 새로운 인연들도 너무 좋다. 어제 선생님께서 올해 4월에 폴 프로필을 한번 찍어보면 어떻겠냐 하셨는데, 4월 촬영을 목표로 열심히 연습할 계획이다. 아. 폴프로필... 상상만해도 두근두근.


어릴 때부터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만약 동물이 될 수 있다면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의 심리테스트가 있는데, 그때 망설임없이 독수리나 솔개 같은 맹금류라고 답한 적이 있다. 밀렵꾼만 피해 간다면 하늘의 최상위 포식자로, 높이 멀리 날며 어디든 갈 수 있을 테니 진심으로 독수리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나는 폴을 잡을 때 내가 나비가 되는 상상을 한다. 지금은 몸이 무겁고 뻣뻣하고, 원하는 만큼 동작이 잘 안 나와서 속상할 때도 많지만 하다 보면 언젠가는 폴 위에서 중력을 이기고 나비처럼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사뿐사뿐 가볍게 폴을 타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계속 타다 보면 한 달 후, 세 달 후의 나는 얼마만큼 성장해 있을까. 연습실에 갈 때면 설레고 수업하는 날이 가장 기다려지는 나는 지금 폴인러브, 그 자체라니까요.

혼자 연습실에서 이것저것... 발끝까지 포인 했나요?(X) 오금을 뼈가 저릴 만큼 세게 걸어 잠겄나요?(X) 가슴을 쫙 펴서 유연하게 열었나요?(X) 제 점수는 드릴 수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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