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부여 탐방기

by 허니베리


역사에 관심이 깊은 아들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역사 이야기, 인물, 지역 등에 관해 새로이 배워가고 있다. 지난 연휴에는 아이의 바람대로 역사 탐방을 하러 가기로 했다.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경주는 이미 기차표도, 숙소도 매진이었다. 또 다른 문화유적지를 찾아 지도를 살펴보던 남편이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를 지목했다.


연휴 직전까지 많은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없는 데다가, 몸도 좋지 않다는 것을 핑계로 이번 여행은 사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 짐도 당일 아침에 대충 챙겼다. 백제와 블라인드 데이트하러 가는 것 같은 심정으로 출발했다.


자동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던 중,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남편의 말에 눈을 뜨고 차창 밖을 내다봤다. 고요하게 펼쳐진 푸르른 풍경 사이로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는 성문이 눈에 들어왔다. 성문을 통과하며 과거의 백제로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활자로만 봤을 뿐 머릿속에 그려보지는 못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라는 나라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생경한 풍경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 대한민국 이전의 역사는 조선시대가 대부분 차지하고 있고, 지역상으로는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 서울 사대문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백제의 첫 수도는 한강 유역에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 장수왕에게 수도를 함락당한 백제인들은 공주로 내려와 터를 잡았다. 그 뒤로 성왕 시기에 백제의 부흥을 꿈꾸며 부여로 천도했다고 하는데, 부여에 방문하고는 그 이유를 실감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지는 아늑하면서도 안전하고 풍요로운 느낌이 들었고,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은 백성들의 삶을 책임질 뿐 아니라 해외와의 교류를 통한 발전도 꿈꿀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차 안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백제문화단지’라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은 1993년 백제의 도읍지 부여가 ‘백제문화권 특정지역’으로 지정된 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17년간에 걸쳐 조성된 곳으로, 삼국시대 백제 왕궁을 재현한 곳이다. 백제의 궁궐은 출퇴근길에 늘 마주하는 경복궁 같은 조선시대 궁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지붕 위 양쪽 끝에 얹은 ‘치미’라고 하는 기와인데, 얼핏 봐도 거대한 새의 날개 형상을 하고 있어 건축물에 우아함과 위엄을 더해준다. 호전적으로 보이는 고구려의 치미와도, 매끄러운 신라의 치미와도 닮은 듯하면서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十五年, 春正月, 作新宫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15년 봄 정월에 궁궐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았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비록 극히 일부만 맛보았을 뿐이었지만, 백제의 궁궐에 대한 느낌은 이 문구와 일치했다.


남편에게 곳곳에 붙어있는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는 문구를 보았는지 물었다. 아이 뒤꽁무니 쫓아다니느라 바쁜 남편은 이 귀한 문구를 놓친 듯했다. 그에게 뜻을 알려줬더니 감동하는 눈치였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기술해 놓은 문장을 만났다고 여기는 듯했다.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부를 축적하는 데 인생의 목표를 두는 대신, 어려운 이웃에게 삶의 기준을 두고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남편이다. 더 나은 주거환경과 경제적 기반 마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이러한 남편이 원망스러웠던 순간이 많았으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는 남들과의 비교로 인해 스스로 처한 괴로움이었다. 우리 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치는 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왕국에 우리의 방식대로 궁궐을 지어가는, 우리 삶의 주권을 지닌 이들인 것을.


‘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았다.’ 백제의 궁궐도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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