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아들의 반항과 방황

경주 여행에서 재발견한 것

by 허니베리

식구들과 경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들이 몇 개월간 조른 까닭이다. 아이가 미리 작성해 놓은 목록을 따라 이곳저곳 방문하며 신라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여행 기간 중 재발견한 것은 찬란한 신라 문명뿐만이 아니었다. 늘 바빠서 얼굴 마주칠 일이 없던 남편과 며칠간 꼼짝없이 붙어 지내다 보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남편에 대한 못마땅한 점 역시 하나둘씩 입체적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못마땅한 점이라는 게 아주 소소한 것 들이지만, 상당히 신경 쓰인다. 예를 들어 사람들 많은 곳에서 코를 후빈다든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과자를 집어 먹는다든지,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소리를 크게 외친다든지 하는 등의 행동이다. 이때마다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눈을 찡긋거리거나, 조용히 말리곤 했는데, 남편은 내가 말리면 더 짓궂게 행동했다.




‘최부자 댁’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남편이 다리가 아프다면서 대청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옆에는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경고 표시가 있었다. 나는 그의 행동에 질겁하며 어서 일어나라고 주의를 줬다.


“표지판 글씨 안 보여요? 올라가지 말라고 쓰여 있는데, 하필 표지판 옆에 앉아요?”


내 말을 들은 남편이 버럭 화를 냈다.


“여기에는 앉아도 돼! 올라가지 말라고 했지, 앉지 말라고 쓰여 있는 게 아니잖아!”


순간, 그런가? 싶어 주춤했으나, 여기에서 깔끔히 물러서기엔 뭔가 껄끄러웠다.


“아니, 자기가 지금 올라가서 앉아있는 거지, 내려와 있는 건 아니잖아!”


남편이 다시 반격했다.


“올라간다는 의미 몰라? 올라간다는 건, 이 위에 발을 딛고 선다는 거야. 신발 신고 올라가는 관광객한테 경고하는 거라고!”


“아, 자기가 한국어에 대한 감이 부족해서 그래. 자기 지금 올라가서 앉아 있는 거야. 그냥 좀 내려와요. ”


남편이 땅으로 쿵 하고 내려오더니 허리에 손을 짚고 씩씩대며 말했다.

자기는 왜 계속해서 나를 비난해?


사춘기 아들이 엄마에게 대드는 것 같은 그의 행동과 대사에 할 말을 잃었다.


“비난한 건 아닌데,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요.”


멀리서 우리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들에게 다투는 모습 보이는 게 부끄러워서 일단 꼬리를 내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남편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계속해서 나를 비난해?’


사실, 내가 남편에게 까칠하게 대한 것은 여행에서 그의 행동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행을 떠나기 2주 전, 그가 던진 갑작스러운 선언이 나의 날 선 태도의 시발점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늦은 밤, 술에 취해 들어와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려던 남편이 갑자기 멈춰 서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을 건넸다.


“아, 나 내일 일찍 들어와요.”


“왜? 무슨 일 있어요?”


“회사 그만둘 거거든.”


“뭐? 왜?”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그리고 곧바로 남편은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뜬눈으로 밤을 꼬박 지새웠다. 이런 큰일을 통보하듯 말해버리고 잠들어 버린 남편에 대한 화, 안쓰러움, 염려, 속상함, 나에 대한 연민이 밤새 머리와 마음속을 빙글빙글 돌며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그는 다음날 회사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늦은 밤 들어온 그에게 회사 관두고 일찍 오겠다던 사람이 왜 이리 늦었냐고 묻자, 그는 회사 관두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냐고 나에게 면박을 줬다. 민망함머리를 긁적이면서, 취중에 내뱉은 그의 말에 밤을 지새운 게 속상했고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남편은 여행을 떠나오는 날까지도 업무로 정신없어서 우리 둘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틈이 없었다. 얼핏 들은 바에 의하면, 회사 대표와 퇴사에 관해 이야기 나눴지만, 이 사람이 담당하는 업무를 정리하는 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이에 관해 여행지에서 오붓하게 대화를 나누려고 벼르며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남편은 그동안의 누적된 피로로 인해 숙소에만 들어서면 잠들어 버리니 내 머릿속은 점점 더 실타래처럼 엉클어졌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남편은 또다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고, 남편의 상황만 생각하면 내 마음에는 우울함이 스며들었다. 그때 갑자기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왜 계속해서 나를 비난해?


사실, 이 사람의 퇴사에 관해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버텨왔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또 삽으로 땅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쉬지 않고 뭔가를 할 사람이라는 것을 믿기에. 단지, 결혼 전 이 사람이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10년 후 자기의 미래에 관해 밝혔던 포부를 믿으며 어려운 시간을 견뎌왔던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을 뿐.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와 내가 그렸던 그림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 물론 그동안 이 사람은 자기 분야에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려왔으나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수많은 가장이 그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서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동시에, 이 사람과 살아가면서 내가 감내했던 부분과 더불어 앞으로 내가 감내해야 할 것들로 힘겨운 내 심정은 돌아보지 못하는 그에게 화가 난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기에는 젊지 않은 우리 나이로 인해 한숨이 나온다. 이 모든 생각들을 그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나의 눈빛, 말투, 태도 등이 ‘비난’의 화살이 되어 그를 찌르고 있었겠구나 싶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 아래 이상주의자이인 나의 남편이 변할 확률은 참으로 낮다. 나는 어떻게 해야 흔들리지 않고 가정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더 이상 그를 비난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내가 선택한 사람,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 이 사람을 비난하는 대신, 에너지를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내 안에 들끓는 그에 관한 연민도, 미움도 해결하려 하지 말고, 당분간은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자. 이 상황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 즐길 수 있는 것, 가꿀 수 있는 것, 준비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자. 그렇게 결심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남편이 ‘아내와 함께 걷는 삶’에 대해서 배웠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에게 바라는 것을 부질없이 글로 풀어내던 중 문득 깨닫는다. 이 모든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도 와 함께 삶을 살아내고 싶은 의지가 여전히 충만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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