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만찬

농부가 되기로 한 남편을 위한

by 허니베리



새하얀 얼굴에 장밋빛 뺨을 지닌 그의 모습은 신화에 등장하는 미소년 같았다. 푸르스름한 초승달이 연상되는 날렵한 눈매, 신선한 오렌지 과즙같이 싱그러운 유머가 톡톡 터져 나오는 사랑스러운 입술. 그의 곁에 있으면 지중해에 떠 있어야 할 해가 내 위에 뜬 것처럼 찬란하고 따사로운 기운이 나를 휘감았다. 나는 운 좋게도 이토록 아름다운 그와 결혼했다.




결혼 십 년 차. 남편은 집에 오면 나와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져서 휴대전화로 일(하거나 걸그룹 영상을 시청)한다. 한데 오늘은 슬그머니 내 곁에 다가와 앉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남편을 흘끗 바라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었음에도, 그의 얼굴은 가마솥에 눌어붙은 누룽지처럼 누리끼리 거무스름했다. 살에 푹 파묻힌 눈은 뜬 건지 감은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고, “피곤해.”라는 말만 내뱉는 입술은 두꺼비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가 곁에 있으니, 사하라를 달궈야 할 해가 내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 같았다.


소파에서 내려와서 거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요가를 시작했다. 그가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다음 달부터 회사 안 나가려고.”

“어, 그래.”

“농담 아니야.”

코브라 자세를 한 채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럼 뭘 할 건데?”

“농업!”

향후 전망성과 정부 지원 등을 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이미 퇴사를 확고히 결심하고 새로운 일에 관한 시장 조사와 분석을 마친 상태였다. 얼마 전, 그가 퇴사에 관해 언급한 이후로 나 역시 현실적인 고민으로 인해 머릿속이 복잡하던 터였다. 따뜻한 액체가 양쪽 볼을 타고 흘러내리더니 요가 매트 위로 떨어졌다. 남편은 내가 땀 흘리며 운동에 집중한다고 여겼는지, 먼저 자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남편이 피곤해서 일찍 퇴근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피곤하다고 일찍 들어오는 사람 아니면서.

‘혹시 내 눈치 보는 거야? 사실 어젠 좀 힘들었어. 당신이 어려움 겪을 때마다 크게 재기할 거라 믿고 묵묵하게 버텨왔던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앞으로의 고생도 눈에 그려져서 갑갑하더라.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일 힘든 건 당신이겠더라고. 어젯밤 내 반응 때문에 힘 빠졌지? 심란해서 당신 새로운 계획에 귀 기울이지도 못했네.’라고 답하는 대신, “김치제육볶음 어때?”라고 물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정육점으로 달려갔다.




집으로 들어와 냉장고를 열고 김치와 고추장을 꺼냈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쾌감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는 말이 생각나서 청양고추도 꺼냈다. 다음으로는 음식에 감칠맛을 더해줄 설탕을 찾았다. 피로도가 높으면 뇌의 세로토닌 수치가 하락하는데, 이때 당분을 섭취하면 낮아진 수치가 일시적으로 상승해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그와 나의 피로감은 설탕의 당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매실청과 사과청도 꺼냈다. 고기의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서 맛술, 마늘, 후추도 준비했다. 마늘의 알리신, 후추의 피페린이 스트레스 많은 남편의 심혈관을 튼튼히 지켜주면 좋겠다. 양념이 고기에 잘 배게 조물조물 주물러서 잠시 재어놓은 뒤, 냉장고에서 자투리 야채를 꺼내 썰었다.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준비한 재료를 붓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매콤한 향이 퍼져나갔다.


집에 들어온 남편은 성찬식에 임하듯 경건한 눈빛으로 식탁 위에 차린 음식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그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하얀 쌀밥을 크게 한술 뜬 뒤, 그 위에 김치제육볶음을 잔뜩 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곧이어 ‘음!’ 하는 감탄사가 들려왔다. 김치제육볶음을 남김없이 먹은 남편은 음식과 동화됐는지 야들야들해졌다.


“자기야, 고마워요. 맛있게 잘 먹었어요.”

“잘 먹어야지. 농사지으려면.”

내 대답에 순간 남편이 움찔했다.

“자기 농사지으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던 그가 어정쩡한 자세로 얼어붙었다. 말을 이어 나갔다.

“재료 공급받아서 당신 옆에서 브런치 카페 할까 봐.”

그가 눈을 두어 번 끔뻑거리더니 아무 말 없이 접시를 싱크대로 옮겼다. 잠시 뒤,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걸그룹 노래를 흥얼거리는 남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편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축축 처지는 옛 노래가 아닌, 경쾌하고 젊은 음악 취향을 지닌 남자와 사는 나는 운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머리 위에 따사로운 지중해의 해가 떴을 때나, 이글거리는 사막의 해가 떴을 때나, 우리의 모습이 꽃같이 화사할 때나, 낙엽같이 바스락거릴 때나, 나는 남편을 위해 마음 담아 식사를 준비하고, 때론 그도 나를 위해 정성껏 식사를 준비한다. 이것이 말주변 없는 우리 부부, 우리 식구(食口)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림

Adonis / Janme Northcte(English, 1746-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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