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묻는다. 진짜 이유가 뭐냐?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시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이 나에게 묻는다. 근데 나도 모르는 답을 어떻게 마음에게 말할 수 있을까. 몸은 내가 움직이고 있지만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았다. 이런 때 영화 하나가 생각났다. 한국 누아르에서 가장 폼나면서도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영화 '달콤한 인생'이다. 많은 지식을 쌓았고 이야기를 전달했고 그냥 앞으로 달려왔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에 대해서는 완벽주의를 지향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 인생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옳다고 생각한 것이 옳지 않을 수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없으며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시도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말이다.
달콤한 인생의 주인공이 그랬다. 선우는 완벽하고 냉철한 인물로 빈틈이 없는 사람이다. 여자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빈틈이라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가 한 여자로 인해 흔들렸다. 그러나 자신은 그걸 모르고 여전히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흔들렸다는 것을 보스는 눈치챘다. 그리고 그의 여자도 눈치챘다. 본인만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에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마음을 모른 채 상대방에게 진짜로 이유가 뭐냐고 말이다. 답은 자신의 속에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태어나면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경험과 습득을 통해 축적된 기억이 쌓이고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는 스키마가 구축이 된다. 어떠한 반응에 대해서 이해 방식이나 경험이 새로운 정보를 이해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스키마의 범위가 작은 사람이 있고 큰 사람도 있다. 불변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나이가 들면 그것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거부한다. 색다른 경험이 적을수록 스키마가 좁아지고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범주 내에서 상대방을 평가하고 잣대를 들이댄다.
영화 속에서 선우의 경험에 의한 스키마에 기반한 정체성은 공고했지만 한 여자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견고함이 무너진 그의 길은 외길만 남아 있다. 그래서 끝까지 가보기로 결심한다. 물론 그를 외길로 몰아세운 것은 보스였다. 솔직하게 흔들렸음을 인정했으면 이들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선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몰랐다.
나이가 들어서 스키마가 견고하게 고정된 사람의 경우 정신과 육체가 말랑말랑해진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최근에 들어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외모만으로 판단될 수는 없다. 유연함은 강함을 이기지만 그 유연함을 가지려면 육체나 정신이 말랑말랑 해져야 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경험으로 인해 자신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누아르의 탈을 쓴 로맨스 영화 달콤한 인생은 인생에 있어서 달콤함이 얼마나 짧게 그리고 순식간에 지나가는지 보여준다. 무얼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를 만큼 내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다다르고 싶은 것이 많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은 꼭 해야 하고 시간의 여유라던가 멍 때리기를 원칙적으로 허락하지 않았기에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고등학교 동창과의 만남이 있었다. 어떤 친구는 6개월 만에 보고 어떤 친구는 1년이 넘은 친구도 있었다. 그 사이에 친구들은 변화가 거의 없었다. 여전히 집 이야기를 하고 직장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하고 싶은 것 도전하고 싶은 것 이런 것은 로드맵에 없었다. 최근에 시도하고 도전하고 있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의 반응은 희한하게 변했다는 반응이었지만 대화가 깊어짐에 따라 반응이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나에게 진짜 이유가 뭐냐고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