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의 지역문화와 장승문화의 결합
청양은 오래전부터 민가에서 칠갑문화와 장승문화를 기리며 제를 올리고 있는 곳이다. 장승문화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하늘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솟대문화와 선돌 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선돌은 ‘입석(立石, menhir)’이라고도 한다. 고인돌〔支石墓, dolmen〕, 열석(列石, alignement)과 함께 대표적인 거석문화(巨石文化)의 하나이며 솟대는 수호신의 상징이라는 점과 성역의 상징 또는 경계나 이정표 등의 기능이 있는 것은 장승과 유사하다.
지인에게 방향제로 주기도 한 장승은 해학적이면서 친숙한 느낌이 드는 우리네 고유문화이다. 민간에서 세우던 솟대의 기원은 '삼국지' 마한전(馬韓傳)에 나오는 소도(蘇塗)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돌을 올려놓던 선돌에 얽힌 전설이나 신앙이 주를 이루며, 예배의 대상물로서의 성격이 본질을 이루고 있다. 칠갑산을 대표하는 사찰인 장곡사로 올라가기 전에 자리한 장승공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장승문화가 변형, 왜곡되어 가고 있던 장승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거대한 칠갑산 대장군과 칠갑산 여장군이 있는 이곳에는 전국에 있는 다양한 표정의 장승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음력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장승제가 치러지는 곳이다. 천년고찰의 장곡사의 기운이 이곳에 내려와서 머무는 느낌을 받게 할 정도로 장승마다의 기운이 남다르다. 하나하나의 장승마다 신처럼 그런 기운을 내뿜고 있다.
산수유 꽃이 천에 피어 있다. 기념물 또는 신앙대상물로서의 장승은 처음 세워진 후 오랜 세월 동안 기능을 유지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장승은 외경 또는 예배, 기원(祈願)의 대상으로서의 성격은 원시사회에서 이루어진 정령숭배(精靈崇拜)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한민족의 이어져오는 문화는 현대종교와 만나면서 단순히 미신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하였다.
장승은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같은 평지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고 간혹 낮은 구릉 위나 비탈에 세워지기도 한다. 장승을 신격화시켜 마을의 수호신, 기자암(祈子巖) 같은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러한 형태와 기능에 따라 여기에서부터 비석이나 장승의 원류를 찾고자 하는 연구가 시도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시라도리 구라키치[白鳥庫吉]는 솟대가 신목(神木)을 숭배하던 신앙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하였다.
장승문화공원에도 솟대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긴 장대 꼭대기에 세 갈래로 된 나뭇가지 위에 세 마리의 새를 조각하여 올려놓는다. 이 새를 봉(鳳)·물오리라고 보기도 하지만 일정한 종류의 새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간을 조간(鳥竿)이라고도 한다.
풍년을 빌기 위하여 정월에 세우기도 하였으며 특별히 관직에 있는 사람이거나 마을에서 공동으로 세웠던 장승과 솟대는 마을 수호신의 하나이고 마을을 수호하여 주는 신체다.
장승이 있는 지역에서 장승제를 지내는 이유 중 두 가지는 첫 번째 지역 경계를 알리고 있으며 금줄로 마을 입구에 해놓는 것은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역과 문화에 따라 장승·장성·장신·벅수·벅시·돌하르방·수살이·수살목이라고도 불린다. 일반적으로 동쪽에 있는 장승에는 동방청제축귀장군, 서쪽에는 서방백제축귀장군, 남쪽에는 남방적제축귀장군, 북쪽에는 북방흑제축귀장군이라는 신명을 써서 잡귀를 쫓는다.
제21회 청양 칠갑산 장승문화축제
2019.4.13~4.14 칠갑산 장승공원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