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존불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 삼존 입상

한국 사람들은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은 예전이나 현재,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듯하다. 특히 불교에서 불상은 삼존불이 조성된 경우가 정말 많다. 본존불을 양쪽에서 균형 있게 받쳐주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로 많이 조성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숭유억불로 인해 마을 등에 불상이 조성된 것이 현격히 줄었다. 그래서 지금 마을이나 지역마다 만들어져 있는 석존 불은 대부분 고려시대나 그 이전에 조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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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읍에 자리한 읍사무소 뒤로는 백제시대에 조성된 산성이 하나 있다. 충청남도 시도기념물 제81호로 지정된 우산성은 석축산성으로 발굴 유물을 보면 백제시대 토기 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후대의 것으로는 고려시대 어골문와편(魚骨文瓦片)도 건물지에서 약간 수습되고 조선시대 와편도 몇 점 수습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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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에 따라서 걸어서 올라가 보면 고려시대에 조성된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이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불상은 보물 제1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읍내리에 있었다가 이곳에 옮겨진 것은 1981년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각을 짓고 모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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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존불의 대좌는 앞면에 3개, 옆면에 2개의 인상을 새겼는데 이것은 고려시대 특유의 수법으로 양쪽의 협시불은 조각 수법이 거의 유사하다. 오래된 세월만큼이나 불상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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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여러곳에 조성되어 있는데 충남에서는 논산 개태사와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이 대표적이다. 다른 지역은 경주 배동과 영동 신항리등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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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고 나서 불상은 표현되지 않은 무불상표현시대였다. 그러다가 1세기경 인도의 쿠샨 시대부터 불상표현시대가 도래되었다. 시간이 지나 인도불상은 불교문화의 절정기인 굽타 시대에 이르면 사색적이고 엄숙한 불안에 균형 잡힌 불신과 완벽한 조각 솜씨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불상 표현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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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그렇게 인도에서 한반도로 전해져서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이 되었다. 신라 말 고려초에 제작된 강원도 강릉지방의 보살상들, 원주·광주·충주 지역의 철조불상, 충청도의 관촉사·대조사·개태사 석불과 같은 거석불(巨石佛)의 특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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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여래삼존입상의 아래에는 청양의 3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3으로 모든 것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3측 석탑은 1층 몸돌 중앙에 문고리 장식이 조각되었으며 지붕돌 층급 받침은 1, 2층은 3단이고 3층은 2단으로 되어 있다. 불상이나 석탑 모두 고려시대 탑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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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올라와도 청양의 읍내와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부처의 전생을 이야기한 본생담이나 일생의 여러 중요한 사건과 그 가르침을 알리는 불전도(佛傳圖)가 회화나 조각으로 표현된 불상은 시대별로 국가나 지방에서 다양한 정치적 목적에 의해 조성되었다. 청양읍의 서쪽은 구릉이 발달하였는데, 특히 지천 유역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발달한 평야의 중앙에 위치하며 남북과 서쪽으로 도로망이 여러 갈래 뻗어 있어 청양군 교통의 중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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