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 정혜사의 우물
공주에 자리한 무령왕릉의 발굴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무령왕릉을 발굴할 때 비가 온다는 이유로 17시간 만에 모두 발굴해내는 신의 기적(?)으로 인해 상당히 많은 백제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신라의 수도 경주의 한 왕릉을 2년 동안에 걸쳐 발굴한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무령왕릉의 주인공 무령왕의 아들 성왕과 부여 은산 별신굿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비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청양의 칠갑산 자락을 돌아 고찰이라고 할만한 사찰이 네 군데나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 위용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은 장곡사뿐이다. 사찰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 사지라고 불리며 현상이 심하게 변하여 가람배치를 파악할 수 없으나 3단에 걸쳐 건물을 배치한 가람으로 청양을 대표하는 장곡사에서도 비슷한 지형을 확인할 수 있는 도림사도 그 흔적만 남기고 있다.
정혜사는 841년(문성왕 3) 진감혜소(眞鑑慧昭)가 창건했다고 한다.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 곳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 요사채가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혜림암[惠林庵 : 일명 中庵]과 석굴암(石窟庵), 서암(西庵)이 남아 있다.
정혜사의 절 일원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상당히 큰 사찰이 자리했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휴정(休靜)이 의승병의 도량으로 이용했다가 1908년 의병과 일본군과의 전투 중에 전소했으나 불상만은 화를 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저 앞에 보이는 대웅전 아래에는 우물이 있는데 저 우물이 바로 백제 성왕이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최근까지 은산별신굿을 할 때 저 우물물을 떠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부흥을 꿈꾸는 백제는 553년 신라의 배반으로 한강 하류지역을 다시 신라에 빼앗겼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신라정벌에 나섰다가 554년에 관산성 싸움에서 전사하고 백제군도 대패한 성왕의 전투는 사실상 백제 멸망의 신호탄이었다.
성왕이 마셨다는 전설과 은산별신제는 백제 군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마을의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는 향토축제인 은산 별신굿에 정혜사의 우물물을 사용했다는 것은 스토리의 연결점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자세한 것은 알려진 것이 없다.
정혜사가 자리한 곳에서 멀지 않은 부여 은산의 별신제는 3년에 1번씩 1월 또는 2월에 열리고, 보통 15일 동안 약 100여 명의 인원이 참가한다. 백제를 지키다 억울하게 죽은 장군이 나타나 병을 없애 줄 테니, 자신과 부하들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 달라고 한 것을 시작으로 별신제는 깨끗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대장, 중군, 패장, 사령 등 군대조직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것은 은산별신제가 장군제(將軍祭)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청양의 정혜사가 자리한 곳은 영험한 기운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란 추측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