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 (武陵桃源)

안동의 무릉유원지

동양에서의 무릉도원은 서양에서는 유토피아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무릉도원이라는 곳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곳이 있기를 바라면서 살아간다. 무릉도원은 아름다운 풍광을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질병이나 걱정 그런 것이 없는 세상도 같이 포함이 된다. 살다 보면 슬픔과 아픔도 겪게 된다. 슬픔은 지극해진 후에야 비로소 슬픔을 넘어설 수 있다고 한다. 슬픔을 위로하는 방법은 슬픔 속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 감정을 풀어볼 수 있는 곳이 무릉도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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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의 고장이며 고택이 즐비한 안동이라서 그런지 무릉유원지라고 이름이 붙여진 곳이 있다. 백조공원과 다정하게 어깨를 대고 있는 이곳은 절벽의 모습이 무릉도원의 그 모습과 닮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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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는 고니류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이곳에는 큰고니, 휘파람고니, 고니, 혹고니, 검은머리고니, 흑고니 등 6종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한국에는 고니, 큰고니, 혹고니 3종이 겨울철새로 도래한다. 우아한 긴 목과 무거운 몸, 큰 발을 가지고 위엄 있게 미끄러지듯 헤엄을 치며 날 때는 목을 쭉 뻗고 천천히 날갯짓을 하기에 백조의 호수 같은 작품도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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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흑고니를 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 흑조는 블랙스완이기도 한데 영화 속에서는 순수한 오데트(백조)와 악마의 화신인 오딜(흑조)을 한 사람의 발레리나가 연기하기도 한다. 사람은 흰면이 있는 반면에 검은 면도 있다. 그걸 숨기고 마치 전체가 하얀 것처럼 보이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안동 백조공원에서 만나본 흑조는 참 아름다운 모습의 백조였다. 혹고니와 흑고니는 종종 한쪽 다리를 등 위로 걷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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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공원을 둘러보면서 백조를 만나보고 아래로 내려오면 무릉유원지의 절경이 나온다. 옛날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집안이 너무나 가난하여 글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가 깜빡 잠이 들어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온갖 산새들이 우짖는 무릉이란 곳이었다. 선비는 그곳에 있는 초당에서 배고픔과 시름을 잊은 채 글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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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는 사람이나 글을 쓰는 사람은 신경이 하나로 집중될 필요성이 있다. 머릿속이 헝클어지던가 복잡한 것들이 들어오면 당연히 제대로 길을 걸을 수가 없다. 지금으로부터 1천6백여 년 전 동진시대의 사람 도연명은 스물아홉에 벼슬길에 나섰지만 난세였고 아첨과 아부는 성품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시는 이백처럼 화려하거나 호방하지도, 두보처럼 현실 비판적이거나 비장하지도 않은데 청아하고 담백하며 순박한 것이 특징이다.


"초목이 무성하면 봄이 온 걸 알고 나무가 시들면 바람이 매서움을 아노라

비록 세월 적은 달력 없지만 사계절은 저절로 한 해를 이루나니

기쁘고도 즐거움이 많은데 어찌 수고로이 꾀쓸 필요 있으랴..."


도화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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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남후면에 자리한 무릉유원지에서 생각한 무릉도원은 바로 각 구성원이 노력을 하고 계절에 맞게 살며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며 열심히 살 때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적은 노력으로 불로소득을 얻으려고 하고 혹은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 본분을 다하고 열심히 일하면 저절로 기쁘고 즐거움이 따르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격려하며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해가 저물면 돌아가 함께 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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