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기와 나무향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글렌 그란트
술 이야기를 쓰는 것은 오래간만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도 해보고 배우지 않은 것이라도 배워보고 안 해본 것이라도 해본다. 익숙한 일만 하고 익숙한 길만 가는 것은 안정적이지만 사실 재미가 없다. 세상에 배울 것과 볼 것, 먹을 것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그렇게 시도하다 보면 안목이 생기고 좋은 재료를 고르며 무엇이듯이 조화롭게 버무릴 줄 알게 된다. 한국인에게 술은 맛이 아니라 취함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특히 위스키를 마실 때 얼음을 넣은 언더락으로 마시는데 이렇게 마시면 좋은 술의 향을 반도 못 느낀다. 이미 얼음에 혀가 마비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몰트 위스키를 좋아한다. 한국에서 몰트 위스키가 낯설 때 이미 글렌피딕을 마시기 시작했다. 당시 괜찮은 위스키는 밸런타인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다. 밸런타인은... 맛이 없다. 17년 정도 이상되어야 아~ 그냥 목에 넘길 수 있겠다는 수준이다. 몰트는 21년을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진짜 향이 좋고 달콤하다. 예를 들어 발베니 25년 레어 매리지는 꿀과 꽃향기가 결합된 느낌마저 든다. 사서 마실 수는 있겠지만 면세점의 면세혜택까지 없다면 주머니를 무척 가볍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글렌 시리즈는 많이 마셔봤는데 글렌피딕을 필두로 글렌모렌지, 글렌리벳, 글렌버기 등이 있는데 글렌 그랜트는 처음 보았다. 가끔 백화점의 주류를 판매하는 곳을 가봤지만 본 적이 없었는데 최근에 주류 판매소를 갔다가 본 몰트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홈텐딩을 할 수 있는 술이기도 하다. 같은 빛은 서로를 비춰 주고, 같은 무리는 서로 찾는다는 말이 있다. 후자는 좋지 않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있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새로운 것을 보려고 하는 노력은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
글렌 그란트는 글렌피딕과 비교하자면 강한 개성을 지닌 글렌피딕에 비해 온화한 느낌이다. 뒷맛의 여운이 다르지만 살짝 감싸는 느낌이랄까. 글렌피딕을 마셔본 사람은 알겠지만 개성이 정말 강하다. 맥캘란의 개성과는 또 다르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로열살루트 21년 몰트도 나왔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맛일지는 궁금하다.
1840년 정식 면허를 받으며 그 역사가 시작이 된 글렌그란트는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싱글 몰트 위스키다. 위스키, 꼬냑, 전통소주와 같은 도수의 술은 증류를 통해 만들어지는데 글렌 그란트는 증류기 정수장치를 통해 무거운 증기와 가벼운 증기를 따로 분류되도록 하였다. 가벼운 증기만을 증류해서 만든 글랜그란트의 맛이 가벼우면서도 부드럽다.
개인적으로 위스키를 유흥주점과 같은 곳에서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술에 대한 예의가 없어 보인다. 술을 빨리 없애버리기 위해 마시는 사람들 같다. 마시는 술보다 버리는 술이 더 많고 맛이 아니라 돈을 버리기 위해 찾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필자는 돈에 예의가 있는 사람이 좋다. 무작정 돈을 움켜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쓰더라도 가치 있게 쓰면 품격이 있다. 꽃은 질 때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며 운무가 끼었을 때 산이 더 신비롭듯이 글의 향기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