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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31. 2023

생각의 프롤로그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

앞서 돈, 인구, 결혼, 삶, 행복의 밀도에 대한 관점을 돌아보면서 사람이 가진 생각의 밀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혹은 균형적인지 살펴보았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밀도가 같을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을 보면 무너진 베를린 장벽처럼 길고 절대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과는 종이 한 장만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지역을 여행을 가면 이정표와 지도가 있어서 찾아가기 쉽게 해준다. 그렇지만 삶에서는 이정표라던가 지도는 매번 새롭게 만들어진다. 누군가 걸어간 길은 있지만 그 길은 자신에게 걸맞는 길이 될 수는 없다. 결국 머릿속에 생각의 밀도가 필요하다. 정확하게 현재위치, 1년, 3년, 5년, 10년 뒤까지의 거리, 방향, 교차로를 알 수는 없지만 자신만의 나침판은 가지는 것이 좋다. 생각이 많은 것이 아니라 생각과 생각사이의 거리가 짧으면 외부요인에 의해 쉽게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     

 

대부분의 물질은 기체에서 액체로, 액체에서 고체로 상태 변화할 때 분자 간 거리가 가까워지고 밀도가 증가하게 된다. 섭씨 4도일 때 1㎖당 1그램(1g/㎖)이 물의 밀도다. 그렇게 정확하게 생각의 밀도를 측정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간단할까. 사람의 신체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물의 밀도만큼이나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물을 이루는 원소중에 수소(hydrogen)라는 이름은 물의 뜻을 나타내는 그리스 단어 'hydor' 와 생성을 의미하는 'geinomai' 와 결합 으로 이는 물의 생성요소를 나타낸다.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생성과정을 통해 살아가는 존재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바뀌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능력이나 의지가 떨어지게 된다.      


사람이 가진 에너지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에너지를 구성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시간, 돈, 의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방향이 정해진 상태에서 가다가 방향을 바꾸게 되면 에너지 소모가 많이 일어나게 된다. 즉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자주 바꾸게 되면 에너지가 축적될 시간이 부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축적된 에너지가 적은 길은 파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가 않다. 살아가면서 사람마다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 있을 수는 있다. 악을 의미하는 Evil은 벗어나기 힘든 인생의 어둠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걸 거꾸로 하면 산다는 의미의 Live이다.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가게 되면 대부분 가면을 쓰고 살아가게 된다. 아닌데도 맞는 척하고 옳지 않아도 따라야 할 상황이 온다. 학창시절의 친구와 더 친해질 수 있는 이유는 그런 가면을 안 쓰고 살았을 때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도 가면을 쓰지 않고 살 수가 있다면 진정한 친구를 만들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다. 성인이 되어서 살아간다는 것은 내면의 악을 인정해야 된다는 의미도 되지만 자신은 아닌 척 천사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의미도 된다. 인간 안에는 천사도 있고 악마도 있다. 어떤 화가가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그림을 그렸다가 나중에 악마의 그림을 그리려고 찾다가 만난 사람이 과거 천사의 얼굴의 모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    

  

한 국가가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면 일반적인 육체노동자보다 정신노동을 하는 정신노동자의 비율이 높아지게 된다.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감정 에너지를 써야 한다. 에너지 게이지는 한계가 있어서 게이지가 닮아 버리면 자신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그런 것을 연소 증후군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처럼 인식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람의 한 면 만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해버린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악(Evil)은 조금만 바꿔 생각하면 삶(Live)으로 전환이 될 수가 있다.      

고집과 신념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사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사전적인 정의를 보자면 아래와 같다.      

고집 '자기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지켜서 우김'

신념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굳게 믿으며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      


고집이나 신념 둘 다 굳게 지키거나 믿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고집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타협을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맞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중요치 않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자신만의 틀에 갇혀서 남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겁쟁이라고 볼 수 있다. 신념은 강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긴 하되 끊임없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에 선입견이 없다. 신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스스럼없이 다른 사람에게 손(돈 같은 것을 빌린다는 의미는 아니다.)을 내민다. 자신이 못 나서가 아니라 같이 갈 줄 아는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어느 분야이던지 한계를 넘어서면 '凡人'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凡人'이 보기에는 그 세계는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꿈과 같은 세상이다. 너무 높은 뜻은 그들에게 위험하게만 보이기 때문이다. 신념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제외하고 사소한 것은 별 의미 없이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중요한 것 같아 보이는데 대충한다.      


한국 사회 상당수의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은 일은 조금만하고 돈은 많이 벌고 싶어 한다. 그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은 내가 인생의 끝에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가 아니라 언제까지 직장에 다닐 수 있고 노후에는 어떻게 살아갈까이다. 물론 생존을 위해 생각은 깊이하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근시안적으로 살다 보면 신념은 없고 고집만 생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집만 생긴다고 말하는 것이다. 젊은이와 노인의 차이는 나이가 아니다. 고집의 벽이 너무 높아져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게 되면 정신적으로 늙은 노인이 되는 것이다.      

책은 안 읽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안다는 작품인 '마지막 잎새'를 쓴 작가는 오헨리다.  오헨리는 1898년 자신이 일하던 은행의 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5년의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서 감옥에 갇혀 살게 된다. 그런데 원래 이름은  오헨리가 아니었다. 죄수의 신분으로 본명을 드러낼 수 없어서 붙인 이름으로 자신이 복역했던 '오하이오 주립 형무소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고 그곳의 교도관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누명을 쓰고 시작한 작가 생활에서 쓴 작품은 언제 햇빛을 볼지 기약도 없었지만 세상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자길 믿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쓰지 않았을까. 그것은 신념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건 고집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난한 작가였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세 라반 테스의 '돈키호테'를 천재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책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가장 슬프다고 평했다. 엉뚱해 보이면서 망상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돈키호테라고 말한다. 자신이 기사라고 착각하고 세상의 부정을 바로잡기 위해 한 발을 내디딘 돈키호테를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고집스러운 사람은 자신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신념 있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한다.      

자 이제 생각의 밀도를 채우기 위한 생각의 골조를 세웠다면 한 가지는 선택할 수 있다. 자신과 자신과의 거리와 수많은 길에서 만나는 장면과 때로는 흔들릴 수 있는 자신을 부여잡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수학에 정답은 하나가 있을 수 있지만 인생의 정답은 매번 달라진다. 과거의 답이 오늘의 오답이 될 수 있다. 오늘의 오답은 미래의 정답이 될수도 있다.      


우리의 관점과 행복에 집요하게 관여하는 사회 문화는 생각을 시시때때로 흔들어 놓는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놀라운 존재이기도 하면서 위험하기도 하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며 이미 변해버린 사람을 분석하는 것은 무의미할 때가 있다. 생각의 관점을 바꾼다면 행복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생각의 밀도는 나와 나, 나와 당신, 나와 가족, 나와 사회등 모든 것에 적용이 된다. 어떤 간격을 유지하고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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