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늘어가게 된 것은 1982년 야간통행금지(夜間通行禁止)가 해제가 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밤 시간에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한 야간 통행금지는 전근대사회 여러 나라에서 대부분 실시되었던 제도였다. 군부정권의 낮은 지지기반등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프로야구 등을 활성화시키고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두고 신체의 자유를 압박하는 통금 해제의 필요성은 커졌던 것이다.
1997년 IMF,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금융위기, 최근 코로나여파까지 끊임없이 경제에 영향을 주는 파동은 밀려왔고 그때마다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것이 자영업의 위기였다. 사실 IMF이후에 자영업 시장이 전체적으로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야간통행금지가 풀리고 나서 자영업 시장은 본격적으로 커지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아시안게임과 세계올림픽에 힘입어 자영업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1989년에 24시간 편의점이 처음 등장했고 지역에서 인기를 끌던 양념치킨 체인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식품의 품질이 표준화된 체인점은 1990년대부터 확산되기 시작하다가 1997년 IMF이후에 어쩔 수 없이 밀려나간 직장인들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집에 괜찮은 목욕탕이 없었던 시절 지역마다 자리한 대형 목욕탕사업도 잘 유지가 되었으며 찜질까지 가능한 찜질방은 1998년에 문을 열게 된다. 90년대는 본격적인 밤문화의 확산이 되던 해였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상당히 높아서 대학을 졸업하면 웬만한 회사는 취직할 수 있었으며 평균근속기간도 지금보다 훨씬 길었다. 마치 평생직장처럼 생각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초토화된 국토에서 대한민국은 성장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얼마 안 되는 자원과 경제적인 지원은 몇몇 기업으로 집중이 되었으며 이 기업들은 오늘날의 대기업이 되었다. 공공이 해야 할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도시에서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공원과 같은 편의시설은 민간공급 중심의 아파트 단지에 맡겨버리면서 정주여건의 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미 자리를 잡은 대형단지 주변으로 각종 문화시설이 자리 잡으면서 집중은 더 심화되었다. 이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공공이 감당해야 할 임대주택을 만드는 데에는 너무나 소극적이었던 것은 민간건설사위주의 건설경기가 국가가 성장하는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장률이 8%를 넘을 때 정부의 그런 시도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득이 올라가고 있었고 IMF이전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자체도 없었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소득격차도 크지 않았다. 20세기가 끝나갈 때까지 모두가 살만했다. 자영업 경기도 괜찮았고 물론 망하는 자영업자도 있었지만 여전히 자영업 시장은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면서 성장하던 한국은 IMF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사교육 시장이 너무나 과열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의 교육시장은 일명 SKY로의 쏠림이 있기는 했지만 모든 학생이 그 학교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IMF로 달라진 채용시장에서는 대학의 서열화가 더 명확해지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의대쏠림현상이 너무나 심각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학을 나와서 어떤 일자리를 얻고 어떤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느냐에 따라 첫 출발점부터 달라지게 된 것이다. 이 모든 문제는 좋은 직장이 생각보다 빨리 사라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어떤 직장을 얻더라도 오랜 시간을 일하면서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안정된 소득을 얻을 수 있다면 문제는 덜했을 것이다. 2003년, 2008년 경제여파를 맞으면서 자영업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많은데 시장은 생각보다 활성화가 되지 않고 있다. 매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는 의미는 더 많은 사람들의 소득이 정체가 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소득이 줄어들고 미래의 소득도 커질 것 같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결혼도 늦게 하고 아이도 낳지 않게 된다.
요즘 핫한 감자이기도한 의료시장 역시 공공의료에 대한 고민없이 생겨난 본질에 대한 문제다. 민간에게만 맡겨둔 덕분에 의사 배출은 철저히 개인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사교육과 경제적인 능력과 맞물려 오늘날의 특권화된 직없군을 만들어냈다. 지금에와서 시스템을 바꾸려고하니 자연스레 저항이 생겨나는 것이다. 한국의 모든 방향은 돈을 어떻게 많이 버느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그만큼 경제성장에만 집중한 나머지 사회적인 합의가 없었던 결과다.
2020년대 들어 물가상승은 그렇지 않아도 정체된 소득을 더 갉아먹어가고 있다. 한국 자영업 시장의 호황은 10여 년에 불과하고 그 이후로 꾸준하게 하락세를 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주요 상권을 가봐도 20대가 아니면 다른 연령대는 잘 볼 수가 없다. 지금 20대에게 결혼은 옵션에도 포함이 되어 있지 않다. 이미 가용한 여윳돈은 이미 부동산에 묶여 있는 상태에서 자영엽 시장을 좌지우지할 밤경제는 더 위축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점점 더 돈을 쓸 수가 없게 된다. 한국에서 특히 가상화폐시장이 뜨거운 이유는 투자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올라버린 부동산을 받아줄 세대는 존재하지 않은 가운데 주식이나 채권도 마음에 드는 수익은 고사하고 원금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이럴 때 묻고 따지지 않아도 무언가를 만들어줄 것 같지 않아도 오르는 가상화폐는 유일한 투자 대상이 되어버렸다. 바뀌어가는 인구구조에 지금 한국은 전체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부모세대가 살아왔던 사회의 관성은 야간통행금지가 있기 전과 그 후에 한국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할 때의 모습이다. 그 이후의 세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사회를 보면서 자라났다.
한국은 이미 성장할 대로 성장했고 자영업 시장의 규모는 어디를 나가던지 놀기 좋을 만큼 밤문화가 잘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어떤 미래를 만들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는 부모는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을 자식에게 제시하고 있다. 특정지역에서 살고 특정직업을 얻기 위해 재투자를 하면서 지금까지 누렸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인 수준을 물려주려고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시장이 커지기 위해서는 국민의 대다수가 소득 수준이 바탕이 되고 젊은 계층이 끊임없이 유입되며 격차해소의 기회는 더 많아져야 하지만 한국의 미래는 그럴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도시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영업 기반이 되어줄 한국의 밤경제 규모는 지금보다 더 축소되며 전체적으로 정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런 변화와 상관없이 원빈의 말처럼 너넨 내일을 살지, 난 오늘만 산다는 사람들은 여전히 밤거리를 누빌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며 개개인이 어떤 가치를 누리는 것이 알려주는 기업의 새로운 미래가 만들어질 것이다. 문제는 그 기업이 한국기업이 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