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열정과 광기의 파시즘

국민이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

극단적인 기독교집단과 정치, 극우의 유튜브의 결합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모든 국민들은 보았다. 주변에 정치에는 1도 관심도 없었던 친구들조차 투표를 하겠다고 만든 일들이 지난 4개월 동안 대한민국을 흔들어놓았다. 보수와 진보를 굳이 정의하자면 국가와 국민이 있을 때 보수는 국가에 비중을 두고 있으며 진보는 개인에게 비중을 두고 있다. 그래서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하는 것들이 국민에게 주어지는 혜택들을 줄이려고 한다. 지난 보수정권에서도 보면 의료민영화가 자꾸 거론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죽고 사는 일에 대한 책임은 국민 스스로 알아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 입장이기 때문이다.


보수는 절대로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국민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않는다. 물론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진짜 어려운 사람들에게 두텁게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그 지원의 장벽을 높게 세워두고 지원하려는 대상을 줄이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가난한 계층은 보수를 지지할까. 가난한 계층의 상당수는 교육의 기회가 적다. 보수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하는 말이 더 효과적으로 전달이 된다. 반면 진보 쪽에 있다는 정치인의 말은 복잡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보수는 기존의 보수언론과 결합하여 진보의 문제를 부각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왠지 진보정치인은 문제가 많아 보이게끔 만든다.


유럽에서 무서운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네오파시즘 정당들이나 기독교 근본주의의 결집 아래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는 제국주의 미국의 파시즘화는 아주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도 지난 3년 동안 그런 과정을 거쳐왔다. 우선 문재인정권의 실책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속에서 자라나는 파시즘의 뿌리는 윤석열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조국가족을 밑바닥부터 털어서 사회의 불공평한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편이 아니면 너희들도 이렇게 만들어주겠다는 무언의 압박도 성공했다.


히틀러와 같은 파시즘정권 탄생은 바로 내편이면 용서가 된다는 것이다. 즉 그쪽에 서면 안전하지만 저 건너편에 서면 모든 것을 털어서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게 해 준다는 힘을 보여준다. 특히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알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정의나 올바름 같은 것은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 여기에 싹수가 보이는 정치인은 악마화를 시작한다. 일반 국민들은 그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그걸 알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내용을 알더라도 법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차라리 누군가가 전과 몇 범 혹은 법원에 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쨌든 나쁜 놈을 만들고 나면 그 방법은 성공적이다. 실제적 진실은 중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파시즘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이 책은 파시즘의 사회과학적인 분석서이다. 파시즘 운동의 발생에서부터 집권 과정, 권력 행사, 몰락까지를 생생하게 마치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처럼 쓰고 있다. 파시즘은 역사적으로 볼 때 성공한 국가가 아닌 허약하거나 실패한 자유주의 국가, 혹은 지체되거나 망가진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고 보았다. 한국의 보수 우파 세력이 ‘파시즘적 경향’ 및 그 세력의 현실적 유혹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에 큰 폭탄을 해체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생각의 힘이 부족한 계층은 하루 일당을 제공함으로써 얼마든지 동원이 가능하며 그것이 마치 국민의 상당수가 같이 동참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여기에 극우 기독교집단과 나름 영향력 있는 유튜버의 결합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그들은 이기는 편에 섰을 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즉 어떤 자리를 만들어줌으로써 그들에게 얻어지는 이득이 상당히 많은 것이라는 당근을 준다. 여기에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한정된 자원에서 많은 자원을 그들에게 할당해야 하니 나머지를 가지고 배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개인의 어떤 권리보다 집단에 대한 의무를 우선시해야 하며, 개인은 집단에 복종해야 한다는 집단 우월주의는 지금 한국에서 큰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행정으로 일하는 공무원과 법치를 담당하는 법조인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법치는 반드시 수정될 필요가 있다. 사회는 변화하기 때문이지만 법이 바뀌는 것은 매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걸 수정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헌법재판소다. 헌법재판소는 사회와 소통하는 사법기관이다. 자칫 잘못될 수 있는 권한 있는 사람의 행동에 즉각적으로 제약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기도 하다.


법은 나름 엘리트라고 하는 계층의 입장을 과대하게 대변하기 때문에 법치는 너무나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걸 해석하고 왜곡하는 데 있는데도 불구하고 법대로라는 말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하면서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학교나 마을 입구에 시험에 합격했다는 플래카드를 걸고 있는 것이다. 공격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고 어느 정도 보수세력을 끌어들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들을 지지할만한 국민의 일정비율을 확보하지 못했고 이 모든 상황을 침묵할 대다수의 국민이 움직였기에 지난 파시즘에 기반한 계엄령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keyword
수, 일 연재
이전 13화1억의 가치, 돈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