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어 가며 버텨낸 2년의 서울살이

by 해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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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서울 본사로 가게 되었다. 발령이 금요일에 났는데 그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라고 해서 걱정이었다. 회사에서는 지역에서 올라온 직원들을 위해 지원금을 월 60만 원 주었다. 나는 지원금 내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검색해보고 돌아다녔다. 결국 고려대 근처 제기동에 월세방을 간신히 구했다. 회사가 충무로였는데 좀 더 시설이 좋고 가까운 오피스텔을 구할 수는 있었지만 최소 80만 원은 하였다. 돈이 아까워서 그냥 조금 불편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만족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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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로 첫 출근하는 날, 서울의 공기가 유난히 상쾌하게 느껴졌다. 이제 내 회사생활도 꽃피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KAM SU장님과 팀장님,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업무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편의점사업팀에서 M사 담당을 맡게되었다. 바이어와 만나 월별 행사를 상담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행사를 진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바이어와 그리 합이 맞는 편은 아니라서 업무는 쉽지 않았지만 나름 만족하면서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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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몇 개월 되지 않아 M사와 K사가 합병한다는 소식이 들렸고 나는 L과장과 함께 K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L과장은 나보다 2살 형이었는데 영업적으로는 일을 잘했지만 성격이나 업무 스타일이 나와 잘 맞지는 않았다. 일을 하면서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말들이 하나씩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나는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시간이 되면 퇴근하고 싶었는데 L과장은 자신이 정한 기한 내에 무조건 업무를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근데 이 기한을 나와 상의 없이 자신이 정하고 윗선에 중간 보고해버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하는 것을 좋아했던 L과장은 야근을 밥먹듯이 했고 나도 같이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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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일도 있었다. 당시 서울에서 만났던 여자친구는 결혼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매력적으로 보여서 좋아했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나와 맞지 않는 점이 많았다. 만날때마다 다투었던 것 같다. 특히 결혼과 관련하여 이야기할 때는 각자 모아놓은 자금을 바탕으로 고려를 해야하는데 현실적이지 않은 말만 했다. 내가 돈을 적게 모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당시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이 10억이었으니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가능한 방법들을 제시해도 좋지 않은 반응뿐이었다. 돈을 불려보고자 투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심자였던 나는 충분한 공부를 하지 않았고 전체 자산의 50% 정도 마이너스가 났다. 물론 그때는 버티자고 생각하여 매도하지 않았고 몇 년 뒤 약간의 수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 2년 간의 시간은 나에게 너무 지옥 같았다. 그래도 그때부터 투자에 대해 조금씩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전 여자친구에게 유일하게 고마워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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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힘든 서울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당시의 팀장님이 나를 불렀다. 내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팀장님은 별다른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나는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도 제주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주의 영업환경은 예전과 비슷할 것이고 이미 해봤던 업무, 해봤던 거래처들을 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업무를 하고 싶었다. 가능하면 부산에서 근무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내 말은 혼자만의 외침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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