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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구 Mar 27. 2022

모순의 몫

양귀자 <모순>

주인공에게 바랐다. 그 남자 말고 이 남자를 선택하면 좋겠다고. 사실 결말에 이르러 내 기대가 미끄러지고 나서야 나에게 그런 바람이 있었음을 알았다. '이 남자'가 패배할 구석은 묘하게 나의 그것과도 닮아있었기 때문에 나는 주인공의 선택을 빌려 소설 말미에 작은 구원을 얻으려 했겠지. 그래 놓고선 예상하는 척 속이는 것이다. 뭐 안진진은 '이 남자'와 결혼하겠군, 선택받을만한 남자니까 말이야. 애초에 바라는 바와 예상하는 바를 쉽게 구분해내는 사람이었더라면 이런 소설쯤이야 읽지 않았을지 모른다. 왜 모순은 겪고 나서야 모순인 줄 아는 것일까.


 읽고 추천해준 친구에게 '결말을 위한 책이었네?' 했다. 대단한 결말이 있다는  아니다. 작가는 마지막 장에 이르자 그러니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말이지, 하면서 참았다는 듯이 쏟아내는  같다.  삶이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모순이면서도 불행의 구조는  아니지 않느냐고. 오히려 삶에 속았을  절반은 행복의  아니었냐고. 돌이키건대 소설  대부분의 시간이 그랬듯 내가 지나는 지금이 불행인지 행복인지 그저 살뿐이었고 앞으로도 그렇다. 무언가 잘못된 것만 같은 순간이 불쑥 다가오거든   가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 터이니 질문은 간단해지지 않을런지.


이 책을 다시 추천하거든 너는 나영규냐고 김장우냐고 물어야겠다.

중요한 질문은 그런 것뿐이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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