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버린 파블로네루다
원두를 바닥에 쏟았다. 커피가루가 담긴 드립백을 쥔 손으로 문을 연다고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열리면서 잘게갈린 가루가 바닥에 모래처럼 엎질러졌다. 파블로 네루다. 원두의 이름은 파블로 네루다였다. 이곳에 들어오면 커피를 마실 수 없을 테니 집 앞 앤트러사이트에 급하게 들려 드립백을 두 박스 샀다. 뜨거운 물을 받곤 방안 책상에 눌러앉아 그 커피를 즐길 생각에 은근히 설렜다. 원두 빠진 봉투만 손에 남아 있었는데 이렇게 적혀있었다.
“네가 뭘 만들었는지 아니, 마리오?”
“무엇을 만들었죠?”
“메타포.”
“하지만 소용없어요. 순전히 우연히 튀어나왔을 뿐인걸요”
“우연이 아닌 이미지는 없어”
-파블로 네루다, <우편배달부> 중에서
아침잠을 뒤척거리다 어딘가 죄지은 느낌이 들었다. 어젯밤 세탁기를 돌려두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벌떡 일어났다. 찌뿌둥한 몸으로 세탁실로 들어가 뚜껑을 열었다. 내 빨래가 바닥에 축축하고 묵직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이대로 널어 둔다면 냄새가 날까. 헹굼 한번 탈수 한 번을 눌렀다. 남은 시간은 이십구 분이라고 했다. 방으로 돌아가 커피를 꺼냈다. 파블로 네루다. 파블로 네루다는 우리 삶 속에 녹아 들 듯 균형감이 있고 단맛이 좋은 블랜드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간밤에 유튜브에서 이런 제목의 영상을 봤다. ‘소설 쓰기를 위해 내가 하는 것들 by김영하’ 김영하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적 영감이란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예를 들면, 나에게 소중한 물건이 하나 사라졌어요. 무엇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겪게 되는 황망함 같은 게 있잖아요. 이런 감정에 대해 한번 탐구하는 거죠. 황망함. 황망하다는 말은 알면서도 낯설고 꽤 들어본 적 있으면서도 쓸 일 없는 낱말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분명히 안에 있는 그 무언가를 ‘황망’하다고 불러주었을 때, 그것은 정확히 황망함이 되고 나는 황망하다 말할 수 있지도 않으려나 뭐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바닥 타일에 흙가루처럼 엎질러진 커피 원두, 아니 파블로 네루다를 보고 김영하와 황망함을 떠올렸다. 지금 내 기분이 황망함일까. 하지만 그때의 기분은 황망하다기엔 어딘가 부족했고 차라리 개짜증남이 아닌가 싶었다. 개짜증남. 분노. 문고리는 왜 돌리는 방식으로 설치해놔서 내가 커피를 엎지르게 만드는가. 왜 누군가 방에 들어서려는 내게 불필요한 말을 걸어서 손에 쥔 커피를 잊게 만든 것인가. 열두 봉에 이만 이천 원이었으니 지금 천팔백 원이나 버렸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란 겨우 그런 것이다.
바닥을 쓸기 전에 새로운 원두를 꺼냈다. 싱싱한 원두를 당장 빗자루로 쓸어 담기란 어딘가 외로운 일이니까. 용기가 없을 땐 어느 정도 외면할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새로 꺼낸 원두의 이름은 버터 팻 트리오. 무슨 뜻인진 모른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새로 받아 한 톨도 흘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커피를 내렸다. 꽃향 같은 커피내음이 방안 가득 퍼졌을 때 나는 바닥의 원두를 쓸었다. 문틈 구석 사이로 엎어진 커피가루를 찬찬히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