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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준성 Dec 14. 2018

ep2. 시간은 충분하다

# 시간에 관한 산술적인 이야기

대한민국에서 방사선사가 대학병원이 아닌 곳에서 일하며 산다는 건


다소 불편한 부분이 생겨도 수용하고 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아직도 나는 방사선사이지만 내 개인적인 비즈니스가 많아졌고 내 생활수준은 높아졌고 7년여의 연애 끝에 결혼도 했지만, 아직도 주 6일을 출근하고 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연차나 월차도 없이 말이다. 사실 대학병원도 주말 콜 당직이 있어서 녹록지 않다. (전국의 방사선사 선생님들 파이팅! RN, AN, 물리치료 샘들도 파이팅!)


물론 이건 나의 선택이니 환경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난 한국에 놀러 온 것처럼 살기로 마음먹은 후로 난 그저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곳을 떠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기 위해 개인적인 비즈니스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것, 매일을 즐겁게 사는 것 외에는 잘 신경 쓰지 않는다.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던 중 문득 '내가 이 세상에 깨어있을 시간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곧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라는 궁금증으로 번졌다. 병원을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아프고 나서야 격세지감을 느낀다. 연세가 드신 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일하는 병원 특성상 연세가 많은 환자와 매일 마주 하다 보니 그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그분들 모두 젊을 때는 주어진 시간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햇살이 좋은 어느 날 난 한가로이 소파 위에서 차근차근 계산기를 두드렸다. 지금 내 나이는 35살. 기대 수명은 약 80세. 그렇다면 나의 수명은 약 45년 정도 남게 된다. 그중에서 하루에 7시간 잔다고 생각하고 7시간 X 365일 X 45년 / 24시간. 이렇게 계산하면 난 4790일 정도를 잠자는 데 사용하고 이는 약 13년 정도이다.


밥 먹는 시간, 용변을 보는 시간, 샤워를 하는 시간으로 하루에 적게 잡아서 2시간 정도를 사용한다. 똑같이 계산해보면 약 1368일을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데 사용하고 이는 약 3.75년 정도이다.


만약 회사를 60살까지 계속 다닌다면 한 달에 약 184시간 X 12달 X 25년 / 24시간 / 365일.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2300일 이는 약 6.3년 정도가 된다. 나이가 들어서 할아버지가 되면 몸도 마음도 힘들 가능성이 높으므로 약 3년을 제외한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에서 얼추 26년 정도는 제외시켜야 한다.


결국 내가 온전히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45-26= 19년 정도만이 남는다는 계산이다. 놀라운 건 여기에 출퇴근하는 시간, 집안 행사, 연례행사, 육아 등등 여러 가지 이벤트들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너스로 죽기 3년 전까지 절대 튼튼한 육체와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필수로 포함되어야 한다. 다소 짧다고 느껴졌지만, 여행을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우리집 거실. 햇살이 비추는 효과는 어떻게 그리는지 아직 모르겠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라는 책에는 누구든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1만 시간 동안 집중해서 노력하면 그 일에 관해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1만 시간의 법칙'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처음 책이 발간되었을 때는 모두 열광했지만, 지금은 1만 시간의 법칙의 진위여부로 말이 많다. 재능을 무시할 수 없는 건 맞지만, 적어도 나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믿는 쪽에 가깝다.  


1만 시간은 약 417일이다. 내게 주어진 여행 일수 중 온전히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에 대입해 보면 난 16가지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간은 충분하다. 조급해 하지 말자. 물론 산술적인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 시간을 이용해서 뭔가 작게나마 인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 한 가지라도 이루어 낼 수 있다면 45년 후
난 뿌듯하게 긴 여행을 마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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