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시절, 엄마와 아빠는 닮은 점이 참 많았어. 서른이 넘어서야 ‘일로 만난 사이’로 처음 만났지만, 알고 보니 대학교 동문에, 같은 업계에서 비슷한 경력들을 쌓아왔더라. 그동안 서로를 모르고 지냈다는 게 더 신기할 정도였지. 어쩌면 드라마처럼 어딘가에서 스치듯 지나쳤을지도 몰라.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니까, 그건 끝내 알 수 없겠지. 어쨌든 비슷한 시간, 비슷한 경험들을 해왔던 우리는 대화가 잘 통했고, 함께 살아가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어.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우리가 참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어. 스무 살 이후의 우리는 닮았을지 몰라도, 그전까지의 삶은 완전히 달랐더라. 특히 양가의 문화가 많이 달랐지. 전라도와 경상도, 기독교와 불교. 종교도, 정치적 성향도, 명절 문화도, 게다가 식성조차도 달랐어.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우리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어. 서로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각자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고 노력했어. 엄마와 아빠는 각자의 도화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채워온 사람들이야. 그려진 꽃의 종류도, 색도 다르지. 하지만 ‘이건 아니야, 이렇게 그려야지.’라고 말하기보다는 ‘아, 네 꽃은 이렇게 생겼구나’하고 서로의 그림을 바라봐 주었어.
그런데 명랑이가 찾아온 후에 작은 걱정이 생겼어. 명랑이의 도화지는 새하얀 백지상태일 테니까. 처음엔 엄마와 아빠가 함께 붓을 들겠지. 그리고 결국 우리 중 하나의 선택이 네 그림에 좀 더 영향을 주게 될 거야. 네가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그런 선택들이 이어질 거야.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 우리는 이제부터, 엄마네도 아빠네도 아닌, ‘우리네’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걸. 서로 다른 두 세계가 하나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게다가 엄마와 아빠는 둘 다 꽤 고집도 세거든. 그래서 종종 다툼이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 우리는 언제나 ‘명랑이에게 무엇이 더 좋을까?’를 기준으로 삼을 거야.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서로의 방식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마치 셰어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처럼 지낸 적도 있었어. 거실에서 함께 TV를 보다가도, 보고 싶은 게 다르면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지. 취향이 드러나는 공간은 각자의 방이었고, 거실은 무색무취한 공간이었어. 그런데 요즘, 엄마와 아빠는 거실 이야기를 자주 해. 명랑이와 함께할 공간을 어떻게 꾸미면 좋을까 상상하면서 말이야.
명랑아, 너의 도화지에 엄마와 아빠가 처음 그리는 꽃은 다를 수 있어. 하지만 그 위에 어떤 색이 어울릴지를 함께 고민하며, 그렇게 우리는, 너를 중심으로 점점 닮아갈 거야. 서로의 다름이, 너를 위한 같은 마음으로 이어질 거야. 우리 함께 멋진 그림을 그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