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꽃

이 순간의 소중함을 알려줘서 고맙다

by 코붱

최근 들어 1-2주에 한 번씩 꽃을 산다. 시작은 그저 ‘생화를 집에 두면 재물운이 올라간다’는 다소 수상쩍지만 어쩐지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말에 혹해서 사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맡게 되는 꽃향기가 좋아서 꾸준히 사는 중이다. 그것도 한 두 송이 정도의 소량만.


원래는 화분을 사고 싶었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식물을 제대로 키워 본 적이 없기에 괜히 화분을 샀다가는 얼마 안가 다 말려 죽일 것만 같았다. 심지어 우리 집에는 고양이도 함께 살고 있어서 고양이의 주 활동 지역인 거실에는 절대로 꽃이나 화분을 둘 수 없다. (꽃 중에는 고양이가 먹으면 치명상을 입는 것들도 많다.)


우리 집은 현관과 거실 사이를 가로막는 중문이 따로 있기에 오직 현관 신발장 위에만 식물을 놓을 수 있는데 아쉽게도 집 구조상 현관에는 그 어떤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적당히 타협점을 찾은 것이 화분이 아닌 이미 잘린 꽃을 사 오는 것이었다.


이번에 산 꽃은 흰색과 붉은빛이 섞인 카네이션과 새하얀 안개꽃, 그리고 해바라기 한 송이였다. 집 근처 마트에서 다발로 묶여 있던 것을 사 왔는데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막상 꽃병에 꽂아놓고 보니 향도 좋고 모양새도 예뻤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토록 싱싱하고 예뻤던 카네이션의 고개가 밑으로 살짝 숙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혹시 햇빛을 너무 못 받아서 그런 건가 싶어 현관보다는 그나마 채광이 좋은 옷 방으로 꽃병을 옮겼지만 다음날이 되고 그다음 날이 되어도 한 번 숙인 고개는 절대 다시 들어 올려지지 않았다.


잘린 꽃이라고는 해도 이틀에 한 번씩 화병의 물을 새로 갈아주고 줄기 끝도 대각선으로 자르는 ‘물 올림’도 꾸준히 해주고 있었기에 그동안은 어떤 꽃을 사 와도 최소 1주일 이상은 싱싱한 상태를 유지했었다.


원인을 모른 채 물을 갈아주기 위해 꽃들을 화병 속에서 빼낸 순간, 나는 그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카네이션의 줄기 끝이 말라있었다. 줄기가 미처 물속에 잠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오로지 햇빛을 못 받아서 그런 거라 믿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번엔 카네이션의 줄기가 물에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까지 했지만 한 번 생기를 잃은 카네이션은 오로지 딱 한 송이의 꽃봉오리만 남긴 채 결국 생을 마감하고야 말았다.


왜 나는 화병 속부터 확인하지 않았을까. 후회해봐도 소용없지만 다음에 이 화병에 꽂힐 꽃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이 감정을 잊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잘린 꽃은 언젠가 시든다. 하지만 시들기 전만큼은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게 살아 있어 주길 바란다.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지만 살아 있는 한 그 누구보다 생생히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다행히 지난주에 산 장미와 거베라는 1주일이 지난 이 시점까지 아직 쌩쌩하다. 분명 며칠이 지나면 이 꽃들도 생기를 잃고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언제나 끝을 생각하면 아쉽지만 아쉬워만 하다가는 이 순간의 행복까지 놓치기 쉽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몇 번씩 이어져온 잘린 꽃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내게 그리 알려주었기에.


앞으로 며칠 간 더 잘 지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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