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모닝 페이지
오늘도 알람 없이 잠에서 깼다. 시간은 새벽 4시 55분. 이제는 새벽 5시쯤 잠에서 깨는 게 습관처럼 굳어진 것 같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 겸 운동방으로 향했다. 전날 밤 미리 텀블러에 담아 둔 시원한 물을 한 두 모금 마시며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브런치에 접속했다. 그리고 정지.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쓰고 싶은 게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그 생각들이 글로 다 나오기엔 마음속에서 정리가 덜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단 쓰면서 생각해도 되지만 나 같은 경우엔 그래서 그 글을 통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해지지 않으면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지금 내가 쓰고 싶은 그 이야기는 아직 정리가 덜 됐다. 설익은 생각을 글로 옮기다 보면 실수가 나온다. 나 혼자만의 생각에 불과한 것을 남들도 다 그런다고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사실 관계가 분명치 않은 것들을 사실인 양 떠들어대기도 하고. 말이 많아지면 실수가 많아지는 것처럼 글이 많아져도 실수가 늘어나는 것 같달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 생각을 글로 쓰고 있는 것 또한 또 하나의 실수를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철칙 중 하나인 '꾸준히 쓰기'를 지키기 위해서다.
한 번은 지인의 집에 놀러 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싱크대에 물때가 전혀 끼어있지 않는 것이다. 그 지인은 같은 아파트에서 10년 이상 거주 중이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렇게 깔끔하게 주방을 정리하고 사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물때가 끼기 전에 계속 닦고 관리하면 된다고.
글도 마찬가지다. 뭘 쓰고 싶은지 생각하는 머리가 굳기 전에, 실제로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써내는 힘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뭐라도 쓰는 것이 아무것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약 2년 정도 글을 손에서 놓고 살았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거치며 현실적으로 글을 쓸 시간이 현저히 부족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마음에서부터 글쓰기에 대한 거부감이 생겨서였다.
글을 써도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나의 귀중한 시간을 써서 글을 써야 하느냐는 생각에 하루 이틀, 쓰지 않던 글은 마침내 1년, 2년 가까이 써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 같은 경우엔 더더욱 자주 글을 써야 한다. 뭘 쓰고 싶은지 분명치 않아도 일단 쓰고 읽으며 고쳐야 한다. 그래야 내 몸에 붙은 글쓰기 군살이 조금이라도 떨어져 나갈 테니까.
이미 생긴 싱크대의 물 때를 지우려면 더 강력하고 효과 좋은 약품을 써야 하는 것처럼 지금의 내게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다만 다행인 점은 그러한 특단의 조치가 그저 괴롭고 부담스럽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언젠가 또다시 '아직 정리가 덜 됐다'는 핑계를 대며 글을 쓰고 싶지 않은 날이 오면 들춰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실제로는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