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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Jul 05. 2024

[소설] 공감능력

엽편소설 - '정' 이야기

핸드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마자 수연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엄마’


그냥 받지 말까, 고민했지만 그래봤자 나중에 더 귀찮아질 게 뻔했다. 엄마 전화는 그냥 빨리 받고 끊어버리는 게 낫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 수연의 손가락이 민첩하게 움직였다.


“왜”


[너는 첫마디부터 ‘왜’가 뭐야]


“아 지금 바쁘다고.”


[뭐 한다고 네가 바빠? 일도 안 하는 애가.]


또 시작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편두통이 다시 시작될 것 같은 기분에 수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수연이 그러는 동안에도 핸드폰 너머에서는 엄마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 진짜, 웃기는 여자 아니니?]


엄마는 같이 일하는 여사와 한바탕 한 모양이었다. 한참을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쏟아내는 엄마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수연은 생각했다. 아, 이것도 또 시작이구나.


엄마는 누군가와 싸우거나 황당한 일을 겪을 때면 수연에게 전화해서 하소연을 했다. 처음엔 수연도 이런저런 맞장구도 쳐주고 같이 욕도 해줬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늘 비슷한 내용에 들어봤자 별로 달갑지 않은, 심지어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욕을 계속 듣는 것이 수연은 점점 버거웠다. 엄마와 전화할 때마다 수연은 스스로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가뜩이나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수연의 일상에서 엄마의 전화는 수연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엄마. 나 지금 자소서 쓰고 있었어. 그런 얘기하려고 전화한 거면 그냥 끊는다?”


그렇게 말하는 수연의 눈동자가 눈앞에 있는 탁상시계로 향했다. 시간은 저녁 9시. 자소서 접수 마감까지 약 3시간 남았다.


[자소서? 전에 면접 본 데는? 떨어진 거야?]


“아 쫌!!!”


매트리스 하나에 책상 하나가 자리한 좁은 고시원 방안 가득 찢어질 듯 날카로운 수연의 고함소리가 가득 찼다. 그러자 노트북 화면 너머 벽 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난다. 수연은 이번엔 진짜로 머리가 아파왔다.


[미안해, 우리 딸. 그런데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 인스타에 올린 사진 보니까 살이 너무 빠졌던-]


이어지는 엄마의 말에 수연의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그런 얘기할 거면 나중에 하라고! 나 지금 자소서 쓴다고 말했잖아!! 엄마가 누구랑 싸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는 지금 하나도 안 중요하다고!! 이번에도 떨어지면 대체 몇 번째인지 알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좁아터진 고시원에서 삼시 세끼 맨밥에 김치만 먹으며 버티고 있다고 생각해?! 엄마는 내가 잘 되길 바라는 거야, 망하길 바라는 거야?? 나 좀 그냥 내버려 두라고!!!”


터진 둑처럼 빠르게 말을 쏟아낸 수연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최대한 목소리를 줄이면서 얘기하느라 가뜩이나 칼칼했던 목이 더 아팠다.


까맣게 점멸된 화면 위로 다시 ‘엄마’라는 글자가 떴다. 그걸 본 수연의 눈꼬리가 무섭게 찌푸려진다. 정말 징글징글하다 징글징글해!!!


드르륵드르륵,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을 무시하며 수연은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본인의 장점과 단점을 쓰던 중이었지. 뭐라고 쓰려고 했더라.... 수연은 열심히 내용을 떠올려보려 애썼지만 뭐라고 쓰려고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아, 진짜..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탁!!!”


신경질적으로 노트북 화면을 닫아버린 수연은 그대로 침대 위로 뻗어버렸다. 이번에도 망했다. 아직 마감 시간까지는 여유가 남아 있었지만 수연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기분으로는 도저히 자소서 따위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수연은 잠잠해진 핸드폰을 들고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그러자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들이 시시각각으로 눈앞을 어지럽혔다. 그때, 지잉-, 또 한 번 진동이 울렸다. 이번엔 카톡이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엄마가 미안해. 하던 거 마저 잘하고 주말에 한 번 집에 내려와.>


엄마가 보낸 메시지를 읽던 수연의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흘렀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왜 자꾸 엄마한테 화를 내게 될까. 안 그러려고 하는데 왜 결국 짜증을 내게 될까. 이래서 내가 계속 취업이 안 되나? 좋은 말만 하고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일만 해도 붙을까 말까 한데, 자꾸만 안 좋은 생각만 하고 안 좋은 말만 하니까 모든 일이 다 안 풀리는 걸까? 나도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말할까? 그럼 다음번엔 합격할까?


“끅, 끅-, 흡-, 끄윽- 끅”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이불속에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토해내던 수연은 천천히 이불을 내렸다. 침대에서 벗어나 바로 옆에 있던 의자에 다시 걸터앉는다. 그리고 닫혀있던 노트북의 화면을 열었다. 이럴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쓰자. 한동안 깜빡이는 노트북의 커서를 멍하니 쳐다보던 수연은 결심한 듯 타다닥, 키보드를 두드렸다.


‘저의 장점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공감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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