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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Jul 05. 2024

[소설] 스트레스 해소법

엽편소설 - '정' 이야기

미정은 며칠 전부터 라멘이 너무 먹고 싶었다. 집에서 끓여 먹는 라면 말고 가게에서 오랜 시간 돼지뼈를 푹 삶아 만든 느끼하지만 깊은 맛이 나는 일본식 라멘이.


다행히도 그런 라멘을 파는 가게가 미정의 집 근처에 하나 있었다. 5년간 푸드 트럭을 몰고 해외 여기저기를 유랑하며 라멘을 팔다가 작년 말에 한국에 돌아와 가게를 오픈했다고 하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곳이었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미정은 현재 모유수유 중이었다. 엄마가 먹는 게 그대로 모유에 영향을 끼치기에 모유 수유 중에는 가려야 할 음식이 많았다.


평소 자주 먹었던 매운 음식은 물론 느끼하거나 기름진 음식도 적당히 조절해서 먹어야 했고, 밀가루 음식이나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음식들도 피하는 편이 좋다고 하여 미정은 그렇게 좋아하던 빵과 라면을 임신과 동시에 끊었다.


그렇게 약 1년 반이 지났다. 원래대로라면 출산 후 한 달 뒤부터는 모유를 끊고 분유를 먹이면서 미정도 먹고 싶은 것을 원 없이 먹을 예정이었건만. 미정의 아기는 태어난 지 약 7개월에 접어드는 지금까지도 오직 모유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빠는 힘이 약해서 보통 젖을 잘 못 빤다는 신생아 시기에도 미정의 아기는 오직 엄마 젖만 빨았다. 아무리 젖병을 가져다 대도 소용없었다. 그런 이유로 미정의 모유수유는 예상을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꾸역꾸역 이어지고 있었다.


이는 평소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미정에게는 다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심지어 아기가 커갈수록 체력적으로 힘들어지다 보니 더더욱 이것저것 먹고 싶어졌다. 그것도 매일 밤 9시 10시 정도만 되면 그렇게 뭐가 계속 당겼다.


어제는 한 입만 먹어도 입안이 얼얼해질 정도로 매운 떡볶이가 먹고 싶었고, 그제는 달달한 생크림이 겹겹이 쌓여있는 딸기 케이크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오늘은 그 타자가 일본식 라멘인 것이다.


어쩌지. 먹어 말아? 한참을 고민하던 미정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디건을 걸치고 지갑을 챙겨 현관을 나서려는 미정에게 TV에 고정되어 있던 남편의 시선이 향했다.


“이 밤중에 어디가?”


“라멘 먹으러.”


“뭐? 라멘?”


뭐라 더 얘기하려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미정은 후다닥 현관문을 닫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라멘이니까 주문 후 나오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다 먹고 집에 돌아와도 30분이면 족하겠지. 중간에 아기가 깨서 젖을 찾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긴 했지만 먹으면서 중간중간 아기방에 설치한 CCTV 화면을 보면서 대응하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남편이 집에 있으니 젖은 못 주더라도 보채는 아기를 달래주기야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바쁘게 움직이던 미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가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 건너 아파트 옆 구석진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 오래된 상가 건물. 미정이 찾는 라멘집은 그 상가의 1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진짜 간판이 없네...”


가게 문 앞에 ‘Open’이라는 나무 팻말이 걸려있는 것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이 가게가 요즘 동네 맛집으로 핫하다는 것이 미정은 못내 미심쩍었다.


인스타에 나오던 수많은 리뷰글이 다 광고였던 걸까? 개중에 몇 개는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내돈내산’이라는 해시태그가 잔뜩 붙은 리뷰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것도 하나같이 다 가게의 라멘 맛을 극찬하는 것들로.


미정은 속는 셈 치고 그 리뷰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오늘 아침에도 내돈내산 리뷰를 보고 간 카페에서 먹은 디카페인 커피도 꽤 맛있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맛있으면 그 계정 팔로우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미정은 라멘가게의 문을 열였다.


약 10평 정도 되는 가게에는 테이블은 없고 오직 바만 있었다. 바 앞에는 다리가 긴 의자가 6개 놓여있었고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이 시간에도 빈자리는 딱 한 자리만 남아 있었다.


비어있는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미정은 바 안쪽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라멘을 만들고 있던 남자 2명 중 한 사람에게 살짝 손을 들었다. 머리에 흰 두건을 쓰고 두툼한 차슈를 기다란 칼로 싹, 싹 잘라내고 있던 남자의 얼굴이 미정을 향했다.


“네, 손님. 주문하시겠어요?”


“저..... 혹시 모유 수유 중에도 이거... 먹어도 되나요...?”


미정은 이미 먹기로 마음먹고 왔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물었다. 그러자 들고 있던 긴 칼을 도마 위에 살짝 내려놓으며 남자가 말했다.


“그럼요. 되고 말고요. 양배추랑 양파를 조금 더 추가해서 먹으면 몸에도 좋고 맛도 더 좋아진답니다.”


남자의 말에 미정이 반색하며 말했다.


“아! 그럼 저 양배추랑 양파 추가에 차슈도 1개 더 추가할게요!”


“넵!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주문을 받은 남자가 냉장고에서 양배추를 꺼내와 탁탁탁, 썰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좀 더 어려 보이는 얼굴의 남자가 살짝 귓속말을 해왔다.


“사장님.... 진짜예요?”


“글쎄, 나도 모르지.”


그 말을 들은 직원이 뜨악하는 표정을 짓자 사장은 직원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휙, 몸을 돌려세웠다.


“원래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근원이야. 특히 육아에 지친 엄마들은 더더욱 먹고 싶은 대로 먹어야 해. 그래야 본인 포함 가족들 모두가 행복해질걸?”


“그거... 경험담이에요?”


직원의 시선이 가게 벽 선반에 장식되어 있는 액자로 향했다. 그곳엔 흰색 푸드 트럭을 배경 삼아 씩 웃고 있는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찍혀 있었다. 청량한 느낌이 드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배는 펑퍼짐한 옷으로도 다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앞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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