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붱 Jul 05. 2024

[소설] 순간의 선택

엽편소설 - '정' 이야기

'우리 집 근처에 이런 데가 다 있었구나.'


성민은 다소 연식이 있어 보이는 오래된 건물 옥상의 난간을 쥐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엔 이곳이 도시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별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성민에게는 그것이 그리 생경한 풍경이 아니었음에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태어나 여태까지 봐왔던 그 어떤 밤하늘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바로 이것이 자신이 눈에 담는 이 세상의 마지막 풍경이 될 것이므로.


하늘로 향했던 성민의 시선이 천천히 천천히, 바닥으로 향했다. 그곳엔 칠흑 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보통 이런 골목길에는 치안을 위해서라도 가로등 하나쯤은 설치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던 성민은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어차피 자신에겐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곧 죽을 마당에 가로등이 설치되건 말건 내 알바 아니지.


어쩌면 가로등이 없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성민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또 실패하면 또다시 이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으니까. 산다는 건 지금의 성민에게는 죽는 것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다. 난간을 쥐고 있던 성민의 손에 한번 더 꽉,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죽을 거야?”

“??”

“웬만하면 오늘은 안 죽었으면 좋겠는데.”


바닥을 향해있던 성민의 시야 속으로 좀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은은한 주황빛이 뿜어져 나오는 한 가게 앞에 웬 남자가 떡하니 서 있었다. 누구지? 아는 사람인가?,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성민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올해로 상경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친구도 하나 만들지 못한 자신이었다. 정확히는 친구를 만들 시간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지만. 그때였다. 성민의 뱃속에서 ‘꼬르륵’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린 것이.


“배고픈 것 같은데, 일단 뭐라도 좀 먹고 하지?”


성민은 괜찮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뱃속에서 아까보다 더 우렁찬 소리가 났다. 성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게졌다.


“뭐, 땡기면 오고 아님 말고.”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문 위에 걸어둔 나무 팻말을 ‘Open’으로 바꾼 뒤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남자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던 성민은 이내 쥐고 있던 난간을 놓고 뒷걸음질 쳤다. 죽을 때 죽더라도 배고픈 채로 죽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중에 자신의 죽음이 가족들에게 알려졌을 때, 밥도 한 끼 제대로 못 먹고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저세상에서도 왠지 가족을 볼 낯이 없을 것 같았다.


성민은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와 간판도 없는 몹시 수상쩍어 보이는 가게의 문을 슬쩍 밀어 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사장님! 3번에 파 추가에 계란 1개, 차슈 1개 추가요!”

“오케이!”


성민이 지금 일하는 이 가게는 매일 밤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한다. 몇 년간 푸드트럭으로 전 세계를 방방곡곡 누비던 사장이 결혼을 하고 아기가 생기면서 이곳에 정착하게 된 곳으로 오픈한 지 불과 1년 사이에 단골도 꽤 많이 생기고 가끔은 밖에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기도 하는 맛집이 되었다.


그런 가게에서 자신이 직원으로 일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죽기로 결심했던 바로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때 왜 안 죽은 거야?”


영업이 끝나고 나란히 의자에 앉아 라멘 한 그릇을 비워내고 있을 때, 사장이 대뜸 물었다. 그런 사장의 모습에 성민은 속으로 살짝 혀를 찼다. 이게 대체 몇 번째 묻는 건지...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자 했던 순간을 계속 떠올리는 것만큼 괴롭고 부끄러운 일이 없다는 것을 사장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평소엔 눈치가 백 단이면서 이럴 땐 또 눈치가 꽝이다. 아니지, 어쩌면 일부러 눈치가 없는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민은 집요한 사장의 시선을 피하며 눈앞에 있는 라멘의 면발을 후루룩 삼켰다. 이틀간 간장 양념에 숙성시켜 적당히 짭조름하고 감칠맛이 나는 계란과 토치로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낸 차슈까지 한입씩 베어 문 뒤, 뜨끈한 국물도 한 모금 쭉 들이켰다. 그러자 점심도 걸러서 훅 꺼져 있던 뱃속이 기분 좋게 든든해졌다. 1년 전 바로 그날과 같이.


“사장님 라멘이 너무 맛있어서 도저히 못 죽겠더라고요.”


때로는 따끈한 라멘 한 그릇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성민은 죽기로 각오했던 1년 전 그날 누구보다도 확실히 깨달았다. 


그렇게 바뀐 자신의 인생이 성민은 퍽 마음에 들었다. 순간의 선택이 가져온 선물 같은 인생을 성민은 최선을 다해 살아볼 작정이다.


그러다 언젠가 1년 전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만나면 그땐 자신이 나서서 따끈한 라멘 한 그릇을 대접할 수 있기를. 사실은 당장 뛰어내릴까 봐 조마조마했으면서 애써 태연한 척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성민은 간절히 바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