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돼지갈비찜 도전기.
돼지갈비찜 먹어본 적 없음.
매운 갈비찜의 맛은 상상도 잘 안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늘 그렇듯이 난 책으로 시작한다.
심영순, 김수미, 아하 부장, 류수영, 백종원, 청담동 선생님 등등 집에 있는 한식 요리책을 보고 덮고 보고 덮고
인터넷 검색창을 뒤지고 또 뒤지고
나흘 정도 나는 매운 돼지갈비찜에 심취되어 있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주변 식당에서 먹어 볼 생각은 왜 안 했을까 싶다.
아무튼 이틀을 고심하고 불현듯 지갑 들고 잰걸음과 비장한 각오를 품고 동네 큰 정육점에 가서
찜용 돼지갈비를 2kg 구매했다.
고기 구매하고 다시 이틀을 보냈고 드디어 휴무일이 되었고
머릿속에 뒤죽 박죽된 조리법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맘에 와닿는 게 없었다..
일단 그렇다면,
돼지갈비는 덩어리 흑흑.
내가 절단해야 하는구나 란 잠깐의 절망감을 느끼며 절단,
핏물 가볍게 빼고 생강즙, 배즙, 간장에 과하지 않은 간으로 재웠다.
여기까지도 '어떻게 해야겠다' 한 계획은 없었다.
가게 밖 햇빛이 따가운 오후
'이번 추석에는 뭘 팔아 볼까' 싶어서 생각하는 듯 멍 때리는 듯 앉아있었다.
매번 LA 갈비를 재워서 준비했었는데 저번 설에 너무 힘들고 남는 게 없었던 끝이 생각나서( 소기름 제거하고 무게 달아 팔았더니 손해가 와장창 났었고 내 손가락은 부었었다.)
LA 갈비는 선뜻 맘이 가지 않았다.
"'추석 때 매콤한 돼지갈비찜 괜찮지 않나? 기름진 음식 많으니 매운 것도 좋을 듯싶고 나름 고기니까 든든하기도 하고 양념에 야채 넣어 먹기도 당면이나 떡 넣어 먹을 여유로움도 있고
하지만 내가 먹어 본 경험이 없으니 어쩐다.'
등갈비는 양식 버전으로 해서 별 문제가 없었는데 찜갈비는 갈피를 잡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일단 책으로 독학을 시작하고 가게에서 틈틈이 검색을 통해서 레시피를 살폈는데
같은 요리 다른 레시피는 나를 더더욱 카오스로 밀어 넣다.
한 삼십 개 정도의 레시피를 찾아서 읽고 (물론 건성건성이다) 상상하고 또 읽고 맛을 가늠하고
하지만 다 맘에 와닿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비장하게 휴무일 오후에 난 부엌에 섰다.
밑간을 해둔 고기를 꺼내고 잠시 생각을 하고 재료를 꺼내 정리를 했다.
감자? 껍질 까기 정말 귀찮음. 패스.
딸기잼? 굳이? 왜? 싫고
케첩? 애냐? 싫어.
이상하게 다들 당근 안 넣었더라.
카레, 찜요리에 당근은 여왕이지 , 난 당근 좋아. 당근 넣고
어라? 고사리 있네. 저번에 백종원에 보니까 돼지고기랑 고사리 맛있다고 하시더구먼
그럼 고사리도 넣고 ,
다시다? 그리 맛있게 먹어서 뭐 하게? 적당하면 됨. 집에 다시다 없으니 패스.
수많은 레시피들이 내 머릿속을 흘러 다녔고 난 완강히 저항했으면 내 멋대로 만들기 시작했다.
'있잖아 사과랑 시나몬이 돼지고기랑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알아?'
그래서 다시팩에다 시나몬을 넣어 준비하고 사과 준비하고
'감자는 귀찮지만 난 단호박 있다. 너희는 없어서 못 넣었구나. 나와봐라 단호박'
' 깨끗하게 매워야 하니까 고추장은 좀 비껴줄래. 마른 고추 나와'
'양념하면 내가 또 한 양념하지 청양 고춧가루, 샘표 701, 다진 마늘, 물엿? 너 별로 조청 가자'
집에 다행히 쌀엿 조청이 있어서 꿀을 뜯는 불상사는 피했다.
이리저리 불안 불안하면서도 딸기잼이 빠지고 다시다가 빠진 내 레시피가 맘에 든다.
제일 먼저 고기 넣어 한번 구워내고 양념 붓고 두 시간 재우고
물 좀 부어서 조리기 시작.
양파, 당근은 처음부터 삼십 분 끓이고 나서 단호박과 고사리 청양고추 넣어서 이십 분 더 부글부글.
시나몬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설탕대신 사과의 단 맛이 배이겠지 좀 덜 달고 덜 자극적이겠지만 괜찮아.
너무 시뻘거면 신분 낮아 보여 괜찮아. 자극적일 필요 없어. 넌 너야!
한 시간 정도의 조리 끝에 마침내 완성.
뭐든지 처음엔 두렵다.
며칠 밤을 내내 걱정하고 또 걱정하고 들여다 보고 의심을 하고.
하지만 막상 부엌에 서서 시작을 하면 맘보다는 머리보다는 손이 움직인다.
어떤 맛을 내고 싶어 하는지 내 맘을 살피는 게 먼저인 듯하다.
뭉근한 단호박과 뭉근한 당근, 양념이 촉촉이 배인 돼지갈비.
맘에 쏙 드는데.
우리 집에 당면도 없고 떡도 없고 그렇네.
그럼 뭐다. 밥 볶으면 되지.
뜨겁고 습한 날씨에 뜨겁고 뭉근한 매운 돼지갈비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