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 준비 중 받은 건강검진에서 체중을 재는 기계는 크게 그녀의 몸무게와 체지방률을 읽어서 그녀는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잠깐의 죽음을 생각했었다.
우습게도 86kg의 삶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이해 안 되게 다들 이뻐라 이뻐라 했었다.
언니들도 오빠들도. 더 놀라운 건 사귀자 한 사람도 있었다!
한 번도 뚱뚱하다고 놀림을 받은 기억도 없다.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그녀의 몸뚱이는 자각을 못하고 지내다가 차츰차츰 살이 빠질 일이 생겼고 30년이 지나 그녀는 작년에 몸도 상하고 맘도 상할 일이 겹치는 가운데 57kg까지 몸무게가 내려앉았다.
57kg을 찍을 당시에는 다들 어디 아프냐고 얼굴색이 안 좋다고 걱정스러운 인사를 건넸으며 그녀는불행했었다. 몸무게와 행복만족도는 별개의 문제라는 걸 몸소 깨우쳤다.
그리고 올해를 넘어오면서 차츰차츰 살이 오르더니 62kg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는 결심을 했다.
30년 동안 30kg 뺀다 치고 56kg에서 그녀 생애에서 다이어트는 끝내기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도시락을 싸기로 결정했다.
가게에서 무엇을 먹든 그녀는 맛이 없다.
정말 살기 위해서 먹는다고 말하는 게 맞는데 문제는 아무거나 편한걸 많이 먹는다는 거였다.
십 년 넘게 오케스트라 단원인 동생의 도시락을 싸왔었으니 거기에 그녀의 것을 얹어서 가게에서 도시락을 먹어 보자 결심을 했다.
그래도 다이어트 도시락이라고 생각하고 크기를 줄여서 먹는 양을 줄이기로 방향을 잡고 집에 있는 손바닥 반만 한 도시락통을 집어 들었다. 가방에 쏙 들어가고 핸드백에도 무난하게 쑤욱 들어갈 크기다.
동생에게 " 여기다 도시락 쌀 거야 내 인생 마지막 다이어트야" 하니까 동생이 물끄러미 도시락통을 내려다보더니 나를 바라보며
"장난해"라고 해서 몹시 맘이 그러든가 말든가 했었다.
다이어트 결심을 했는데 그녀는 부추김치가 먹고 싶었고 괜한 엄마에게 "엄마가 해준 부추김치 맛있어 정말 맛있어 해주세요 해주세요"하며 저녁 내내 쫓아다녔고 엄마는 "얘는 "이라시며 눈을 살짝 흘기셨으나 아침 부엌에서 그녀는 갓 담은 부추김치를 마주했다.
새벽형 인간인 그녀는 알람 없이도 꽤 정확하게 다섯 시에 눈을 뜬다.
새벽 기상 그녀의 루틴은 영문 성경 필사로부터 시작한다.
그저 영작을 잘하고 싶어서 시작한 영어 성경쓰기는 십 년이 깔딱 넘어가는 그녀의 루틴이지만 말씀자체를 새기거나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길게 반복되는 이름이나 말씀에는 "뭐라는 거야 아침부터 기운 쏙 빠지게 예수님 말 너무 길어"하면서 짜증을 낼 때도 다반사라 그리 은혜스럽지는 않다.
아무튼 성경필사를 하고 동생 도시락을 싸고 수목원에 아침 산책을 다녀오는 게 루틴이라면 루틴이다.
그녀의 다이어트 첫날, 동생의 도시락 메뉴는 김밥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부추김치와 밥을 쌌다 최대한 눌러서.
동생의 김밥은 아보카도와 연어로 그녀는 부추김치로.
엄마가 쌌다면 계모설이 돌겠지만 엄연히 그녀가 쌌으며 그녀는 그녀의도시락이 더 맘에 든다.
아보카도 김밥은 밥 양념에 고추냉이를 넣어 주면 격조 있는 맛이 살아난다.
가게에 계란은 있으니 프라이 하나 추가해서 먹으면 딱이다.
왜 그리 부추김치가 먹고 싶었는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첫날의 다이어트는 성공.
가게에서도 뭘 집어 먹지 않았다.
배 고픈 걸 즐기고 그녀는 배가 고프구나 하면서 보내면 그만이었다.
저녁때 집에 돌아와서도 깨작깨작 대강 먹고 집 근처 고등학교 운동장을 걸었다.
그래도 도시락이 너무 작긴 한지 그녀는 끝없이 눌러 담았고 야채와 같이 부피만 차지하는 건강한 것들은 담을 생각이 없었다. 다음 날은 비엔나소시지와 진미채를 눌러 쌌으며 그녀의 엄마는 한심해하셨다.
그녀의 엄마가 한껏 까불어 대는 그녀를 보시면서 동생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더란다.
"나이 오십에 저렇게 살기도 힘든데" 그녀는 좋은 의미로 듣는다.
진미채는 살짝 도톰한 오징어 채를 마요네즈에 버무려 놨다가 고추장 마늘 설탕 등을 넣고 무치면 쉽다.
비엔나소시지에 칼집 따위를 넣는 수고는 하지 않고 그냥 툭툭 터지게 굽는다.
사람 손이 많이 간 요리는 싫어서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터지는 것을 왜 문어를 만들고 눈을 달고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