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을 통한 판매를 해보고 싶어서 준비했었고 지금 생각하면 무슨 심사를 받았는지 모르겠으나 합격? 통과? 되었다.
입점 통과되고 서울 가신 고객님들께서 주문을 해주셨고 첫 상품을 만들어야 했다.
월요일은 휴무일이지만 원대한 포부를 품고 아침 일찍 돼지고기 한 덩이를 가지고 가게로 향했다.
그녀는 휴무일 가게를 좋아한다.
휴무일이니 손님이 안 오실게 확실하고 그 확실함은 그녀에게 안정감을 준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라디오를 켜고 가게문을 크게 열어젖히고 가지고 나온 돼지고기 한 덩이와 감자두 개 당근 세 개 양파 하나를 손질하고 오뚜기 카레를 꺼내 놓고 쌀을 씻어 밥을 준비했다.
오뚜기 카레는 얼마만인가?
가게에서 종종 카레를 팔기 때문에 난 복잡한 카레 만들기에 익숙하다.
가람 마살라, 코리앤더 파우더, 커민, 터머릭 등의 향신료와 토마토 페이스트, 요거트, 미트볼, 큼지막한 스테이크를 넣은 카레를 만들었었는데 그날은 학교 급식맛 오뚜기가 그리웠었다.
감자를 깎고 양파 껍질을 벗기고 당근 껍질도 벗기고.
그녀는 카레의 푹 익은 당근을 좋아한다.
그래서 작은 감자 두 개에 당근이 세 개다.
버터를 잔뜩 넣어 양파 볶다가 고기 넣고 감자 넣고 당근 넣고 물을 붓고 바글바글이 보글 보글로 천천히 끓을 때 카레를 넣고 보글의 템포를 낮추고 기세가 노곤해지면 완성이다.
카레를 완성해 놓고 취사를 마친 밥솥을 열어 밥을 주걱으로 살살 풀어준 후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막상 잼 작업에 들어가니 밥 생각은 없어졌고 폴폴 풍기는 단내에 입맛은 잃었다.
잼 완성 후에 커피를 한 사발 내려 창가에 앉아 잼이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드는 생각은
'밥 괜히 했나 저 많은 카레와 밥을 어쩌지' 싶었다.
오후 세시쯤 잼 작업은 마무리되었고 카레는 밀폐통에 옮겨져 냉장실에 들어갔다.
그렇게 휴무일이었던 월요일의 작업은 마무리되었고 어이없게도 그날은 그 주의 제일 편안한 날이었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지루한 영화 같았으며 장르는 호러였다.
단순하게 생각했었던 배송 절차는 그녀의 머리를 녹여내듯이 복잡했으며 다 된 줄 알고 배송기사님 기다리고 있었는데 "송장이 안 왔다"라는 통보만 계속되었고 수요일은 가게 손님도 많아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거리를 활보할 지경이었다. 배송회사 직원분과 그녀가 함께 넉다운 되기 직전에 앱에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될 일이라는 걸 깨달았고 누굴 원망하겠는가 다 그녀 탓이다 생각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택배 회사 직원분은 감동적으로 친절하고 인내심이 있으셨으나 플랫폼의 배송방식을 모르셨으며 플랫폼은 수없이 반복하는 그녀의 요청에 눈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에 외면당한 느낌이 들 때 그녀 곁에 있어준 건 식은 오뚜기 카레였다.
오뚜기카레가 끔찍한 일주일을 같이 버텨주었다.
화요일부터 막상 배송이 끝난 목요일까지 배가 고파서 딸깍 넘어갈때즘 찬밥과 카레 한 국자를 넣어 끓여 먹었던 카레는 일주일 내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 맛이 기억에 없다.
머릿속이 꼬여 있었기에 따뜻한 밥에 솔솔 얹어 먹은 카레는 사치였다.
그저 냄비에 밥 넣고 카레 넣고 그래도 냄비채로 먹지는 않았던 것은 그녀가 지킨 그녀의 마지막 품위라 한다.
웃긴 건 그 사이에 가게 메뉴는 꽤 화려해서 훨씬 맛있는 게 많았는데도 그녀는 굳이 식은 카레만 찾았었다.
월요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배가 고팠다.
아침부터 하루 내내 먹은 것이라고는 잼 세 스푼과 커피 한 사발뿐이었으니까.
귀신에 홀린 듯이 마트에 들어가 떡볶이 떡과 어묵을 사들고 집에 들어와
퇴근하는 동생을 기다리며 라볶이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먹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에서도 사라진 라볶이를 일말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이 척척 만들었다.
진라면 순한 맛의 수프를 뜯어 물에 베이스로 깔고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 넣고 떡, 어묵, 파까지
라면 사리는 따로 삶았다가 마지막에 보태는데 중요한 건 후추이다.
지루하고 텁텁할 수 있는 떡볶이에 정점을 찍는 세련됨을 부여하는 맛은 후추가 맡는다.
진라면도 오뚜기 인가?
라볶이에는 면발이 가는 사리가 좋았을 뿐이다.
집에 진라면이 있었고.
마치 앞으로 다가올 역경과 시련을 예언하듯 라볶이는 맛있었으며 극복의 의미인지
"오뚜기" 였다.
아무튼 일주일 동안 정신이 뒤죽박죽이었으며 배송비는 어마어마하게 나와서 그녀는 당혹의 수렁텅이에 빠졌고 다음 주말 내내 아팠다. 실컷 골골 앓고 난 일주일 후 아침 배송기사님이 배송비 책정이 잘못 되었다면서 배송비 일부를 돌려 주시러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