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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남이사장
Dec 19. 2024
그녀의 점심 - 15.
지나가긴커녕 여전하네- 바나나 빵.
점심 장사는 마무리하고 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뿌옇다.
며칠 전부터 비소식이 있었는데 며칠 동안 하늘이 파랗더니 드디어 비가 오려나
찌뿌둥하게 걸레 빤 물색 하늘이 싸늘한 바람이 은근히 맴도는 찬기운이 싫었다.
녹차 마셔볼까' 해서
그녀는 물을 끓이다가 문득 가게 옆에 도서관 벤치가 생각이 났다.
'나가 볼까'
그녀는 잠깐의 외출에는 가게 문을 잠그지 않는다.
에어컨도 켜두고 히터도 끄지 않고 전화번호만 남겨 놓고 불도 환하게 켜두고
그럼 손님분들이 오셔서 전화를 주신다.
" 사장님 들어오세요"
" 네 금방 가요 커피포트에 커피 있어요 드시면서 앉아 기다려주세요"
우리 가게 사장 없는 풍경이다.
굳이 잃어버릴 것도 없고 있어 봤자 음식이고 가져간다면 배고픈이 가져가겠지
좋은 일 했다 생각하자란 맘이다.
그냥 이리 살고 싶다.
텀블러에 녹차를 뜨끈히 담아 손에 들고 옷을 단단히 입고 도서관 벤치에 앉아서
'왜 여태 여기를 와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한탄을 하면서 앉아 있었다.
날도 흐리고 찬 기운이 스산스러웠지만
스포키한 분위기 나쁘지 않아서 인스타 스토리에 좋다고 올렸더니 그녀의 득달같은 고객님들이 "춥습니다" " 내일은 비 온답니다" DM을 주셔서 사랑받는 느낌 좋았다.
짧고 달콤한 도서관 티타임을 마치고 가게로 복귀.
아침에 GS 사장님이 주신 날짜가 살짝 지난듯한 바나나가 그녀를 기다린다.
맨해튼 델리에 잠깐 파트타임일을 했었는데 흑인 셰프님이 쉬는 시간에 종종 맛이 간 바나나로 만들어 주셨는데 어찌 만드는지는
알수없었지만
그 달큼한 향은 기억이 생생하다.
심심한데 바나나 빵이나 만들어볼까.
동네 분들과 나눠 먹어볼까.
바나나 빵에 바나나는 싱싱하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맛이 갈까 말까 물러질까 말까 노란 껍질에 반점이 두두둑 열개쯤 생겼을 때가 제일 맛있다.
몇 달 전에 예스 24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 책 레시피가 엉망이라고 번역가 분이 요리 안 해 보신 분 이신 듯"이라고 혹평을 받은 책이 그 내용이 궁금해서 구입했고 그대로 몇 개를 만들었었는데 괜찮았다.
밀가루, 메밀가루, 바나나, 생크림, 카놀라유, 설탕( 넣으라 했는데 안 넣었다) 시나몬 넣고 반죽기에 훨훨
묽은가? 묽구나! 싶었지만 그냥 굽기로.
망쳐봤자 바나나 빵이다.
그녀는 시나몬 듬뿍 초코칩도 듬뿍 - 이 단계에서는 레시피 따위는 소용없다.
온 가게 안에 시나몬 향이 가득하고 바깥의 스산함을 빵의 온기가 덮는,
게다가 크리스마스 캐럴 재즈버전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포슬포슬 하다.
50분이 지나 바나나향과 시나몬 향이 가득한 떡두꺼비 같은 빵이 김을 모락모락 뿜어 내고
노란 종이백을 꺼내서 GS사장님 꺼, 택배 사장님 꺼, 부동산 사장님 꺼를 봉지 봉지 싸서 김이
식지 않았을 때 돌리고 그녀는 시원한 우유와 따끈한 바나나빵 앞에 앉았다.
이런 사소함이 주는 아늑함에 가끔은 행복하다.
2023, 2024 어두웠고 힘들었고 알 수 없는 여러 감정 때문에 우울하고 잠 못 이루고 많이 울었다.
처음 느끼는 감정 앞에서 그녀는 무력했으며 헤어 나올 기력과 용기는 없어서 그냥 주저앉기로 했었다.
잘 안 웃었고 열심히 하지 않았고 힘을 내지도 않았었다.
힘을 내면 죽을 듯해서 그래서... 힘 빼고 지내보기로.
25년 만에 연락 닿은 오빠들은 씩씩했으며 그때도 지금도 그녀 편이었다.
새해엔 좋은 일?
작년에 그럴줄 알았지.
올해 말도 꺼내기 싫으네
다 지나가리라? 천만에 .
설상가상이 아니면 다행이더이다.
얼마 전에 재건오빠와 성준이랑 잘 안될 거라고 전화를 하니
"경남아 너 혹시 나를 맘이 두고 있다면 접어 "
하는 재건오빠 때문에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 내가 웬만한 여자들
과는
다
잘
수
있는데
넌
안돼.
웃긴
여자랑은 못 자"
" 도대체 뭐라는 거야"
웃기다니 천만다행이다.
바나나빵 건네받으시고 환하게 웃으시던 GS 사장님 표정이 좋았다.
"내가 일거리를 줬나 보네. 얼굴에 묻었네"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살 닦이 주시는 것도 환한 미소도 좋았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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