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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Apr 18. 2024

남이소소 11

아빠와의 하루.

월요일은 가게 임대세 지급일이다.

일요일 저녁 통장을 들고나가 임대세를 이체하고 들어와 방에 앉아 있는데

외출 나갔다 들어오신 우리 엄마 난데없이 삼만 삼천 원을 주시면서

"너 잔돈 좋아하잖아 이거 너 가져"하셔서 의아해했다.

'엄마 나 임대세 내고 온 거 아시나?' 했는데 모르시는 듯했다.

51세의 딸은 엄마가 책상에 내려놓은 삼만 삼천 원을 가만히 내려보았다.


월요일이 되었고

베짱이는 관현악 축제 일정 때문에 엄마는 다음 주에 다가오는 아빠기일이라

산소 방문 일정으로 베짱이와 함께 서울을 가셨다.

두 사람이 떠나고 혼자 휴무일을 맞은 나는 빈 집을 어슬렁 거리다가 밥을 하고

계란이랑 오이만 넣은 김밥을 세 줄 둘둘 말아 놓은 후 거실에 드러누워서 넷플렉스를 본다.

김밥 세줄과 마트에서 사 온 도시락면 하나를 오늘의 식량으로 거실 한가운데 테이블에 챙겨 두고 보는 남편을 살해한 시리즈물은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가 교묘하게 섞인 게다가 한국 자막도 너무 빨라서 대사를 거의 다 놓치며 보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성준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전화를 거는 건 처음이다.

"뭐 해"

" 우리 일 져서 바빠 아직 사무실이야 넌 무슨 일 있어?"

" 아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넷플렉스 본다 하니 뭐가 재미있냐고 해서 '빨간 머리 앤' 이랑 '눈물의 여왕' 보라 추천을 해주시고 - 수사물이나 전쟁 다루는 건 아예 안 본다고 이쁜 전쟁 스토리는 싫다고 한다-

나의 추천을 듣고 비웃던 그는 이틀이 지난 지금 그 바쁜 일정 틈틈이 눈물의 여왕 보는 중이시다.

전화를 끊고 김밥을 몇 알 집어 먹고 멍하게 있는데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 엄마는 내가 맘이 안 들 땐 아직도 아빠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 넌 어쩜 아빠랑 똑같니"라고 해 그럼 내가 "죽은 남편 돌아온 것 같아서 좋지 뭘 그래"라고 해. 우리가 뭐 그렇게 나쁘다고 '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난 아빠랑 똑같다.

김밥을 씹다가 갑자기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져서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은 총 들고 뛰어다니는데 난 울었다.

울다 생각하니 저 번 성준이 와의 통화에서 여자 친구 이야기 하는데 내가 "잤어?" 하고 물어보니

" 환장하겠네"라고 답한 게 생각났다.

"그게 궁금해?"

"어"

" 대놓고 너처럼 묻는 사람 없겠다"

" 궁금한데 꿍하고 있으면 뭐 해 난 물어봤고 넌 대답 안 해도 그만이고 해도 그만이고 난 두 번은 안 물어보거든" 했었다.

그렇게 오후가 되었고 날씨 흐렸지만 살살 몸을 일으켜 수목원이나 가볼까 싶어서 옷을 갈아입고 주섬주섬 나섰다.  한적한 수목원을 걷다 보니 아빠 생각이 다시 났고 보고 싶었고 그리웠다.

우리 아빠는 나를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았다.

단 한번 과외에서 돌아오는 길 해 뉘였 뉘 엿 지는 이마트 앞 벤치에서 나를 기다리다 나를 보고는 반갑게 웃으면서 골프장 아빠 친구분 딸이 친구분에게 옷 사줬는데 위아래 같은 트레이닝 복인데 참 좋더라고 하셔서

한 번에 접수 한 나는 아빠에게 이마트 옷은 그렇고 아디다스 가볼까 해서 한벌 사드렸는데  우리 아빠 돌아가실 때까지 그 옷만 계속 입으셔서 내가 "도대체 빨고 입으시는 거냐고 그만 입으시라"라고 했었는데 마지막 병원까지 입고 가셔서 끝내 아빠 돌아가시고 내가 태웠었다. 내가 마시다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식은 커피 수거해서 드시는 것도 좋아하고 맥도널드에서 소프트콘 사서 천왕사길 드라이브 하는 것 참 좋아했던 우리 아빠.

내 음식 제일 좋아하는 사람 단연 우리 아빠다.

"Hey big daughter what is tomorrow breakfast menu?" 슬쩍 멋쩍게 웃으시면서 일 저녁에 물어보셨고 난 매번 짜증을 내고 "뭘 원해"라 하고. 우린 서로 으르렁도 잘했지만 참 친한 부녀사이였는데.

다이어트 한참 할 때 365일 중 340일 수목원에 갔었다.

그리고 그중 300일 정도 아빠랑 수목원에 다닐걸 한 번은 같이 걸어와 볼걸 하고 먹먹한 생각에 아렸다.

그땐 내가 늙을 걸 몰랐고 아빠가 돌아가실 걸 몰랐지.

그런데 엄마도 불사조 같이 계속 내 옆에 있을 것 같아.

자꾸  잊기만 하나보다. 아빠.

해 질 녘에 빈 집에 돌아와 남아있는 김밥을 먹고 남편을 죽인 여자 주인공과 만나고 나니

하루가 길다.

아빠 돌아가시고 한참 지난여름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아빠 우산 없을 텐데 우산 들고 주차장 나가봐야겠네"하고 생각했다가 갑자기 덮친 아빠가 없다는 생각에 말 그대로 목놓아 울었었다.

아무도 없는 집 적적한 집에서 그렇게 아빠와 난 하루 종일 틈틈이 만났었다.

'아빠 기일에 뭘 원해, 말만 해 내가 다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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