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무기력한 날들
불면의 2주가 지나고 나면 과수면의 2주가 찾아왔다. 출근하기 5분 전에 일어나 옷만 갈아입고 나갔다가 퇴근하고 저녁도 먹지 않고 바로 잠들기도 했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잠만 자곤 했다. 쏟아지는 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느낌이었고 그동안 못 잤으니 괜찮다는 보상심리도 컸다.
이 시기에는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양극성 장애에서 우울증의 시기인 것이다. 나에게 우울이란 물속에 잠겨있는 것 같다. 내가 물로 둘러 쌓여서 주변의 소리도 크게 들리지 않고 느낌과 감각들이 나에게 직접 와닿지 않고 물을 거쳐 오는 것 같다. 나의 감정도 진폭이 별로 없고 깊은 심해의 느낌 마냥 고요하다. 우울을 이야기할 때 물이나 푸른색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느껴지는 것 같은 각성상태와는 너무도 다른 무딘 상태. 나는 나의 우울한 상태를 매우 싫어했다. 굳이 과거형으로 쓰고 있지만 사실 아직도 좋아하지 않는다. 우울증과 경조증의 시기를 반복하며 씨름하면서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는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지금도 우울의 시기를 살아가는 일이 나는 참 힘들다. 아무 욕구도 없고 오로지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출근을 해서도 당장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을 하고 나면 멍하게 있기 일쑤였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늘 바빴던 퇴근 후와 주말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밥벌이의 강제성이 사라진 휴직 시기에는 거의 밖에 나가지 않았다.
단순히 우울함과 무기력함을 느끼는 게 힘들기보다는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인정과 성취를 통해서 내 존재를 입증하고 가치 있다고 느끼던 나였다. 하루에 4개의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고 뭐든지 잘하고 싶어서 욕심껏 무리해서 일하다가 건강을 해친 적도 있었다. 내가 해낸 결과들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었다. 타인의 인정이 있을 때 그것들은 가치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우울로 인해 활동이 적어지면서 성취가 줄어들자 내 존재가 가치 없게 느껴진 것이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힘껏 달리던 경주마가 주저앉았고 달리던 속도만큼이나 만신창이가 되었다. 다시 달리게 하기 위한 어떠한 당근도 통하지 않았다. 그런 경주마는 레이스에서 쫓겨나게 되니까 두려웠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로 이상한 점이 없다는 것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PTSD가 될만한 사건을 겪은 것도 아니고 큰 실패를 한 것도 아니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한참 행복할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하는 시기였다. 나 자신조차도 이 증상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불의의 사고를 겪어서 아프게 된 것이라면 좋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우울한 이유를 설명하기도 힘들었고 스스로 이해할 수도 없었으므로 도움을 받거나 나를 돌보는 것이 어려웠다. 그저 드러누워서 나 자신에게 계속 칼만 꽂아댔다.
'먹을 자격도 없는 인간이 왜 계속 먹어대는 거야. 식충 같다. 나는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야. 쓰레기야. 내가 이렇게 못난 인간이라는 걸 들키고 다들 나를 싫어하겠지. 눈 뜨고 싶지 않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 그만두고 싶다.'
모진 말들을 퍼 부우며 나를 학대했다. 지쳐 쓰러진 나를 돌보고 기운을 내게 도와주어야 할 시기에 더욱 괴롭히기만 했다. 그럴수록 우울과 무기력은 더욱 심해져갔다.
집단상담에서 만난 동료에게 이런 어려움을 말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아픔의 색이 명확하지 않아서 더 힘들 수 있겠다고 말해주었다. 그제야 내 아픔이 힘들만하다는 것이 받아들여졌다. 그 후 교육 분석, 집단상담, 약물치료와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서 내가 왜 아프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더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