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잠이 오지 않기 시작하고 바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는 현상일 거라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노력을 해봤다. 불면증에 좋다는 행동들 음식들 민간요법들이 다 소용없고 나서야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증상이 시작되고 6개월이 지난 뒤였다.
처음에는 불면증으로 인한 편두통으로 신경과에 갔다. 많은 검사들을 하고 뇌 혈류량이 증가하여 두통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불면으로 인해 뇌 혈류량이 증가한 것이므로 궁극적인 이유를 찾지는 못했다. 불면의 이유는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했다. 두통을 줄일 수 있는 약을 처방받아 왔다.
그다음은 정형외과에 가서 초음파와 MRI를 찍고 목디스크, 척추 측만증과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평소에는 별로 못 느끼지만 불면의 시기에는 목과 허리가 너무 아팠다. 오른쪽 새끼발가락의 감각도 사라졌었다. 통증 완화 주사를 경추에 맞고 도수치료와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근육이완제를 먹기 시작했다.
한의원에서는 진맥을 하더니 ‘화병’이라고 했다. 34살에 화병이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내게 권해주면서 ‘딱 자기 옷이네~’라고 말하는 직원을 보는 불편감이 들었다.
화병이란 모름지기 고된 시집살이를 묵묵히 참아내고 억척스럽게 자식들 키워낸 50-60대 아줌마들이 주요 대상이 아니었던가. 나는 시집살이를 하지도 않았고 자식도 없는데.. 게다가 화병인 사람들은 얼굴에 열이 오르고 속이 많이 답답하고 화가 나보이던데. 내가 생각하는 화병 증상과 나의 증상은 너무 달랐다.
하지만 인자하게 생긴 한의사 선생님이 내게 물어보는 증상마다 나는 ‘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 손, 발이 뜨겁나요? 네. 원래는 찬 편인데 잠을 못 자는 동안은 손, 발에만 열이 올라요.
- 식은땀이 나나요? 네
- 가슴이 답답한가요? 네
결정적으로 명치에 손을 대서 누르는데 너무 아파서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여기 누르면 다 아픈 거 아닌가요?" 아니란다... 그래서 나는 화병이 맞단다.
“그런데 환자분은 증상이 꽤 심각한데 얼굴에는 그게 티가 하나도 안 나네요.”
“그래서 속이 문드러졌어요.”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고 눈물이 후드득 흘렀다. 화병이 맞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화병에 좋다는 한약을 먹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간 신경정신과에서는 ‘이대로 악화되면’ 양극성 장애가 된다고 했고 결국 양극성 장애가 되었다. 불면을 기점으로 증상이 시작되고 1년 반이 지나서야 나는 신경정신과에 가게 되었다. 그것도 출산 후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더는 방법이 없는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찾아간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은 조금 더 빨리 병원에 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담을 하면서 약물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병원과 연계하여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하기 때문에 나에게 신경정신과는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친숙하고 선입견이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많은 것들이 두려웠다. 상담사인데 스스로를 잘 돌보지 못해 신경증이 생긴 것이 나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일이면 어쩌지,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약물치료의 부작용에 대한 걱정, 타인의 시선에 대한 걱정 등.
다행히 아는 분에게 좋은 선생님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내가 상담분야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일반인이 었다면 선택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잔뜩 위축된 채 전화를 걸었고 목소리를 크게 해 달라는 요청을 두 번이나 들었다. 초진은 예약하기가 더 어려웠으며 2달 뒤로 진료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현재 1년째 신경정신과에 다니며 약물치료와 상담을 받고 있다. 증상이 심해지면서 약의 종류와 개수가 늘어났고 최근에야 약 하나를 줄였다. 필라테스는 임신기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하고 있어서 허리와 목의 통증이 많이 호전되어 근육 이완제는 먹지 않는다. 초기에 비해 나의 증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그에 따른 대처방안이 생기고 있다.
현재 양극성 장애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 신경정신과 치료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