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정말 거짓말처럼 잠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버스에서 서서도 잠을 자던 나였는데 한숨도 못 자는 날이 3-4일이나 이어지니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좋기도 했다. 잠을 자는 시간에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좋았던 것도 잠시, 몸이 아파오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편두통도 심해지고 어지럽고 손발은 뜨겁고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예민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밥도 잘 먹지 못했고 낮잠이라도 잘 수 있으면 점심시간에라도 잠을 보충하면 좋으련만 누워는 있어도 잠이 잘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신을 잃듯이 까무룩 잠들 때가 있는데 그때가 마침 운전을 하는 중이어서 아찔했던 적도 몇 번 있었다.
불면에 좋다는 모든 것들이 나에겐 무용했다. 따뜻한 우유도 카모마일 티도 멜라토닌도.. 수면유도제를 먹기도 했지만 금방 다시 깨고 말았다. 남쪽을 보며 자야 한다, 베개 속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넣고 자면 된다는 민간요법들과 손녀가 걱정돼서 할머니가 구해오신 부적도 소용없었다.
잠이 오지 않는 시기에는 몸은 아파도 기분은 좋다. 의욕이 충만하고 아이디어도 마구 떠오르고 평소에는 결정하기 힘든 일들도 척척 결정하는 대범함까지 나타난다. 에너지가 너무 없기 때문에 핸드폰의 저전력 모드처럼 정말 필요한 곳에만 에너지를 쓸 수 있다. 그래서 결단이 빨라지고 필요 없는 것에는 신경을 꺼버릴 수 있다. 좋고 싫음이 정확해지고 싫은 것을 참지 않고 말하거나 피하게 된다.
내 인생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싫은 것 티 안 내고 참기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상대가 무안할까 봐, 분위기가 이상해질 까 봐, 미움받을 까 봐.. 등의 수많은 이유로 나는 싫은 것 앞에서 티 내지 않고 참아왔다.
데이트할 때 거의 돈가스만 먹자던 옛 남자 친구에게 다른 것을 먹자고 얘기를 못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돈가스남’이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도 웃으며 결제를 하고 다시는 그곳에 가지 말아야지 다짐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싫은 것을 더 이상 참기 어렵게 된 것이다. 예전처럼 웃으며 넘기려 해도 넘어갈 수가 없었다(싫은 거 참는 것도 어려운데 웃으며 넘기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나는 ‘프로 불편러’가 되었다. 그동안 참고 있던 것을 입 밖으로 꺼내놓자 관계에서 많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일단 엄마와 큰 전쟁을 몇 번 치렀다. 7년 연애하는 동안 크게 싸운 적 없었던 남편과도 심도 깊은 대화의 시간을 몇 번 가졌다. 주변 사람들이 목소리가 커졌다, 시원해졌다, 무서워졌다는 말들을 했다.
이 시기에는 돈 씀씀이도 커진다. 점심메뉴를 결정할 때 새우볶음밥이 먹고 싶어도 그날 내가 열심히 했는가를 평가해서 열심히 했으면 먹고 열심히 하지 못했다면 그냥 볶음밥을 먹던 나였다. 500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나에게 그렇게 야박하게 굴었다. 남에게는 선물을 잘해도 스스로를 위한 돈은 잘 쓰지 않았고 필요한 물건을 살 때도 최소 3곳은 비교해보고 샀었다. 하지만 불면의 시기에는 비싼 옷이나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서야 이런 점들이 경조증의 사인이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