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춘기는 조용했다. 일탈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조용히 몰래했다. 거짓말하고 영화 보러 가기, 독서실에서 만화책 보기 등. 큰 소리 내며 부모님에게 대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부당하게 혼나면 가출을 불사하더라도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던 동생과 달리 나는 혼나는 것이 무서워서 잘 못하지 않은 일도 죄송하다고 빌었다. 매를 맞는 일이 적었지만 비굴함이 쌓여갔다.
그런 내가 불면증이 시작되고 나서 부모님에게 불편한 점들을 얘기하면서 부모님은 때아닌 사춘기 자식을 기르는 기분이 드신다고 한다. 어릴 때는 그렇게 착하더니 지금 와서 왜 이러냐고.
‘그때 못했던걸 지금 하는 거지요.’
사람은 누구나 그 나이대에 해야 할 과업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춘기에는 부모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업을 수행하느라 부모님과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나는 그 과정을 30대가 되어서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가 말했다.
“지* 총량의 법칙이 있다더니 맞는 말인가 봐. 어렸을 때 하고 지나갔으면 좀 좋니. 그때는 엄마가 젊어서 힘도 있었는데 늙은 엄마한테 이래야겠니”
발끈한 내가 말했다. 나의 발버둥을 지*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니.. 나이를 앞세워 동정표를 받으려 하다니..!
“엄마 지금이라도 하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엄마 나이 더 들어서 말할 힘도 없어졌을 때 내가 이러면 말도 못 하고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지금은 설명(이라고 쓰고 변명이라고 읽는다)이라도 할 수 있잖아요.”
눈을 흘기며 등짝 스매싱을 하려는 엄마의 손을 피하며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산후조리를 위해 엄마와 함께 지냈을 때, 몇 주간 나의 행태(?)를 관찰하더니 이렇게 말하셨다.
"우리 딸이 참 의젓했는데 결혼하더니 남편한테 완전 아기처럼 구네."
그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이 싱긋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어릴 때 못 했으니 지금이라도 해야죠."
생후 18개월부터 너무 빨리 언니가 되어버린 나는 어리광을 부릴 곳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의존 욕구, 자아 정체성 확립의 과제들은 내면에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었다.
그때 하지 않은 것을 굳이 챙겨서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저도 사춘기를 지나 진정한 성인이 되지 않겠어요.